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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수렴 발목 잡는 불합리한 규정 고쳐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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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는 노사 분규로 인한 근로손실일수가 경쟁국과 선진국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 올해도 임.단협 교섭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분규 사업장이 늘어나고 있어 큰 걱정이다.

현행 임.단협 교섭 과정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다. 우선 교섭 결렬의 기준이 문제다. 법 이론대로라면 대표성을 지닌 사용자 1인과 노동조합 위원장 1인이 협상안에 서명 날인을 하면 교섭은 타결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교섭위원 전원이 서명 날인해야만 타결되는 것으로 단체협약이나 조합 규약에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노동조합은 교섭위원 중 한 사람만이라도 반대의견을 제시하면 교섭이 이뤄질 수가 없게 된다. 사용자 측도 이와 유사하다. 아무리 다른 교섭위원들이 찬성하더라도 사업주나 대표이사가 반대하면 역시 교섭은 이뤄질 수 없다.

이렇게 만장일치나 한 사람의 거부권에 의해 이뤄지는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인 교섭 절차를 고쳐 노사 양 당사자가 모두 과반수 혹은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명시적 규정을 내부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교섭이 결렬돼 분규가 장기화됐을 때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단체협약에는 노사 어느 일방의 중재 신청은 그 효력이 없는 것으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교섭이 결렬돼 분규가 장기화됐을 경우에도 쟁의행위나 직장폐쇄가 무한정으로 계속된다면 결국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기업의 실정에 따라 이러한 지경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이 지나면 노사 어느 일방은 중재를 신청해 파국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올해부터는 사적 조정 중재의 길도 입법적으로 마련돼 있어 노사는 모두 다양한 조정 중재를 통한 분규 해결의 길을 선택할 수 있으므로 단체행동권의 침해를 우려할 필요가 없게 됐고, 자신이 선택하는 바에 따라 보다 효율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임금 교섭의 경우도 노동조합은 오직 생계비만을 근거로 해 임금 인상안을 만들고 사용자 측에서는 회사의 생산성만을 주된 기준으로 해 인상안을 제시한다. 생계비나 회사 실정을 모두 고려한 임금 산정방법이나 공식이 없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또한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경제상황의 변화가 빠르다 보니 현행 노동법으로는 규율해 나가지 못하는 분야가 매우 많다.

연봉제, 성과급제, 임금피크제,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산별 노사관계의 교섭 방법이나 교섭 범위 등에 관한 게 그것인데 이러한 많은 쟁점 등은 응용된 법의 이론과 노동관행에 의해 규율돼야 할 내용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함께 참여하는 연구개발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허병도 한국공인노무사회 조정중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