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있는 아침 ] - '병원' 부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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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지하(1941~ ), '병원' 부분

나는
병원이 좋다
조금은,

그래
조금은 어긋난 사람들,
밀려난 인생이.

아금바르게
또박거리지 않고
조금은 겁에 질린,

그래서 서글픈,
좀 모자란 인생들이 좋다.

거리며 빌딩이며
수많은 장바닥에서
목에 핏대 세우는
그 대낮에

귀퉁이에 서서
어색한 얼굴로

사랑이니
인간성이니
경우니 예절이니

떠듬거리는
떠듬거리는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나는 병원이 좋다.
찌그러진 인생들이 오가는,

그래서
마음 편한,
남보다는 더 죽음에 가까운,

머지않아 끝날 그러한,
그래서
마음이 편한


나는 역시
'쟁이'던가


나는 역시
'산송장'이던가

아아
나는 역시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던가

좋다.
끝이 분명 가까우니,
오로지
생명만을 생각하느니.


슬픔이 지혜를 불러온다는 서양 속담처럼 사람은 괴롭고 외로운 처지에 놓이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의 생을 온전히 되돌아보게 마련인가 보다. 보름 간 독감이 몸에 머물다 갔다. 살과 뼈를 물고 갉아대는 바이러스에 시달리면서 나는 오르지 땀으로 무거워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더운 김이 오르는 밥 한 그릇 먹는 것만을 소원하였다. 병원에 가면 '오르지/ 생명만을 생각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이재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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