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이야기 마을] 노래방, 천국과 지옥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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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들 '한 노래'하죠. 근데 전 정말 자신 없었습니다. 2차로 곧잘 가는 노래방 순례가 제겐 흥겨움이 아니라 노동이었죠. 즐기기는커녕 '분위기 망치면 안 되는데…'하는 걱정만 들뿐이고요. 음치는 아니지만 시작버튼 누르기 무섭게 음정 내리느라 바쁠 정도로 여자치고는 심각한 저음인 데다 숫기마저 없어 고조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버리기 일쑤였지요. 결정적 약점은 기억력이 약하다는 것. 특히 가사가 외워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남들처럼 눈을 지그시 감고 분위기를 잡거나 화려한 율동을 선보일 수가 없었지요. 끝날 때까지 화면만 뚫어지게 보지 않으면 가사를 놓치기 십상이니까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흥겹게 장단 맞추던 동료들이 제 차례가 되면 잡았던 탬버린을 내려놓고 으레 노래책에 코를 박던 장면들. 그런 어두운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남들 영어문장 외울 때 저는 노래 가사를 적어 다니며 외웠습니다. 남들이 mp3로 음악을 즐길 때 저는 음악시험을 앞둔 학생처럼 공부하며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차도가 없었습니다. 일단 노래방에 들어서면 말짱 도루묵이 되더라고요. 좀 더 특별한 훈련에 돌입했지요. 결과요? 성공이었습니다. 궁금하시죠? 저처럼 노래방 가는 것이 고역인 분들, 일단 가면 뭔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인 분들에게 제 방법이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하는 바람에서 제 경험담을 좀 나눌게요.

첫째, 좋아하는 노래 목록 만들기. 하루 이틀에 끝내지 말고 시간을 갖고 떠올려보세요. 둘째, 소화 가능한 곡 추리기. 내게 가능한 음정과 리듬인가 판단하세요. 셋째, 재미없는 곡 삭제하기. 아주 잘 부르지 않는 이상 너무 느리거나 우울한 곡은 과감히 지우세요. 넷째, 이제 그 목록을 가지고 노래방에 가세요. 그리고 1시간짜리 원맨쇼를 펼치세요. 그러면 일단 '미션 석세스'입니다.

곡 수가 많을 필요도 없습니다. 노래방 한번에 서너 곡이면 충분하잖아요. 레퍼토리 스무 곡 정도면 충분하지만 하나라도 남들이 흉내 못 낼 정도로 멋지게 소화할 수 있다면 매번 반복해도 좋아하더라고요.

혼자서 노래방? 웬 청승이냐고요. 하하, 몇 번만 해보세요. 노래방 공포증과 관련된 각종 장애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성격개조와 대인관계 개선은 보너스랍니다. 전 요즘 가수라는 말까지 심심찮게 듣는 걸요. 다들 성공하십시오. 아자!

양은수(31.회사원.서울 서빙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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