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진 전문기자의 부동산 리포트] 일본식 장기불황 우려 부동산시장도 대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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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우리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1990년부터 시작된 일본경제의 거품붕괴로 부동산값은 거의 반 토막나기도 했다.

80년대 말까지 호황을 주체 못하던 일본이 왜 그런 고통을 받게 됐을까. 아시아 경제전문가인 리처드 던컨은 저서'달러의 위기'에서 "과잉 투자에 따른 생산 공급 과다"를 그 연유로 꼽았다.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에다 외국 투자자본까지 대거 유입되면서 벌어진 수요를 무시한 과잉생산이 파국으로 몰아넣었다는 분석이다. 물론 부동산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 대한 얘기지만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분야가 부동산과 금융시장이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경제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하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져들 수 있다"며 우리 경제 구조의 취약성을 경고했다. 경기가 안 좋아도 되도록이면 잘 돌아간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온 정부의 태도를 고려할 때 경제 수장이 직접 그런 경고를 보낸 것으로 보면 상황이 좋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2.7%에 그친 1분기 경제 성장률은 그렇다 치고 4월 들어 경기 선행지수.도소매 판매율.설비투자 등이 하락세로 반전된 데다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섰다는 게 경제 부총리의 발언 배경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당장 위급한 상황으로 치닫는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경제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점을 언급했을 뿐이다. 지금 상황은 부양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을뿐더러 부동산 규제완화 등의 고전적인 수법을 동원할 경우 오히려 경제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부의 시각인 듯하다.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될까. 경제 여건은 좋지 않은 데도 돈은 엄청 이쪽으로 흘러들고 있다. 게다가 세계 유명 투자펀드를 비롯한 외국자본이 속속 국내로 들어와 부동산 쪽을 기웃거리고 있어 이 시장은 전반적인 경제 사정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정부가 내놓은 전국 각지의 개발사업 등을 감안하면 부동산값 상승 여지는 더욱 크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80년대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수출이 잘돼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호황기였던 사실만 다를 뿐 외국자본을 포함한 엄청난 돈이 부동산 쪽으로 유입돼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는 점은 비슷하다. 우리의 경우 아직은 투자수요가 워낙 많아 공급 과잉의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고용불안과 소비위축이 심화되면 어떻게 될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가수요보다 실수요자가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 투기수요는 철저히 차단하면서 실수요를 키우는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일본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최영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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