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오보로 끝난 '일본군 생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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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 2명이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생존해 있다는 보도는 희대의 오보사건으로 끝났다. 이번 소동의 발단이 된 옛 일본군 2명의 생존설을 처음 제보한 필리핀인 여성은 1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사자들과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일본군과 일 정부의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나섰던 중개인도 이날 "2명은 일본인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일 언론들은 1일 일제히 사과와 해명 기사를 실었다.

◆ 당사자들 발뺌=마리린 나가키(49)란 필리핀 여성은 이날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민다나오섬 제너럴산토스시 인근 마투툰산의 삼림보안관에게서 '야마카와''나카우치'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산속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일본군 유골 수습을 하는 일 유족회 측에 전했을 뿐이며 두 사람과는 만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난 이번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으며 황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면담을 주선했던 아사노(58)란 이름의 중개인도 일 언론들에 "제너럴산토스에서 240km 떨어진 산속에서 두 사람과 만나 출신지와 소속부대 등을 물어봤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며 "그들은 일본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 사기극인가=중개인은 지금까지 자신의 회사에 있는 필리핀인 직원이 옛 일본군 2명을 목격했다는 말을 근거로 일 후생노동성과 외무성에 직원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또 "옛 일본군은 이들 2명 외에도 더 있다" "두 사람은 이슬람 과격파 조직인 제마 이슬라미야 세력권과 접한 현지 게릴라 측에 있으며 2명의 통행료로 내 돈 500만 엔을 지불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 언론은 "그가 수시로 말을 바꿔 온 점에 비춰볼 때 '2명과 직접 만났는데 일본인이 아니더라'는 이번 증언도 신빙성이 의문시된다"며 "돈을 타내려는 사기극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놀아난 일 언론과 정부=옛 일본군 2명이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대서특필했던 일 언론들도 꼬리를 내렸다. 지난달 27일자 1면 톱에 '옛 일본군 2명 필리핀서 생존''현지 당국이 보호, 귀국 희망' 등의 단정적 제목을 달았던 산케이(産經)신문은 1일 사회부장 명의의 해명기사에서 "정보와 사실의 엄중한 구별 없이 정보 쪽에 치우쳤던 점을 솔직히 반성하고 중요한 교훈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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