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6·15축전 대표단 규모 축소 통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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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평양 통일대축전의 당국.민간 대표단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자는 북한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우리 정부는 완전히 허를 찔린 모습이다.

이번 행사와 21일부터 서울에서 열릴 장관급 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러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던 정부의 구상이 헝클어지게 됐다. 단순한 규모 축소가 아니라 행사의 의미까지 훼손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폭군(tyrant)'이 아닌 'Mr(미스터) 김정일'로 부르고, 북한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등 북.미 관계가 나아지는 듯한 분위기 속에 날아든 통보였기에 정부의 실망감은 더 컸다.

통일부는 이날 오후 내부 회의를 열어 대응책을 숙의했으나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남북 간 합의사항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기에 북측에 합의사항 준수를 촉구할 계획"이라는 원론적 입장만을 내놓았을 뿐이다.

사실 이번 행사에 거는 정부의 기대는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컸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행사 준비를 진두지휘하면서 삼청동 남북대화사무국에서 '과외 공부'도 했다. 행사기간 중 북측 당국자들과의 만남을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 정상화 등 현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논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게 복안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의 면담 가능성에도 대비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은커녕 행사기간 중 있을 남북 당국자 간 접촉도 의례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급속히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엔 대응카드도 마땅치 않다. 전체 판을 깰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결국 북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간대표 규모를 축소해 달라는 북측의 요청을 받은 '6.15 공동행사 준비위원회'(공준위)도 혼란에 휩싸였다.

긴급 대책회의를 연 공준위 관계자는 "7일까지는 양측이 행사 규모를 조율하는 게 가능하다"면서도 "이미 합의에 따라 명단까지 주고받았는데…"라며 곤혹스러워했다. 공준위가 잠정 확정한 615명의 명단은 지난달 27일 통일부를 통해 북측에 이미 통보된 상태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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