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방북단 축소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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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평양 6.15 통일대축전에 참가할 남측 정부와 민간대표단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통보해 왔다.

북한은 1일 오전 대남 전화통지문에서 "미국이 최근 핵문제와 관련, 우리 체제를 압박.비난하는 등 축전 개최에 새로운 난관이 조성되고 있다"며 "당국 대표단의 규모를 70명에서 30명으로 줄여달라"고 알려왔다. 북한은 이와 함께 615명으로 합의했던 민간대표단도 190명 수준으로 축소할 계획임을 알려왔다고 통일부 당국자가 밝혔다.

정부는 남북한이 지난달 28일 개성협의에서 장관급을 단장으로 한 대표 20명과 지원 인원.취재진 50명 등 당국 대표단 규모를 70명으로 하기로 합의한 만큼 이를 이행할 것을 북한에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북측의 입장변화로 행사 규모가 크게 줄어드는 게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남북.해외공동행사 준비위 관계자는 "북한은 국제 팩스를 통해 '남측이 우리(북)의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며 민간대표단 규모 축소 입장을 알려왔다"면서 "북측과 접촉해 구체적인 입장을 알아본 뒤 별도 협의를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뉴스 분석] 비료 '실속' 챙기고 미국에 비난 화살 남북관계 속도조절

북한의 6.15 통일대축전 방북단 축소 요구는 미국의 대북압박론을 구실로 이른바 민족공조 공세를 강화하겠다는 속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평양 남북공동행사에 대한 기대치를 남한 당국과 민간에 한껏 고조시켜 놓은 뒤 '미국의 방해책동으로 어렵다'며 잔치판을 어지럽힘으로써 미국에 비난의 화살이 가도록 하겠다는 계산일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1일 대남전통문에서 "부시 행정부가 우리 정치체제를 모독 중상하고 북침을 위해 남조선에 스텔스기를 배치하는 등 새로운 난관이 조성됐다"고 이유를 댄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오는 10일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북한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행사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남측에서 민간 참석자 615명과 당국대표 70명, 해외에서 200~300명이 참여하면 1000명 안팎의 외부 손님을 한꺼번에 받아야 한다. 당국대표단의 경우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대표가 20명인데 비해 자문단.지원인원.취재진 50명이 동행하는 것 역시 북한 입장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같다. 10개월 만의 당국회담으로 비료 20만t을 받아낸 북한이 다시 남북관계의 속도조절에 나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핵문제나 6자회담 복귀 등이 결론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관계만 속도를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규모 축소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이 북측에 있음을 과시하고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남한 내 비판여론을 부추기고 갈등을 조장하려는 측면도 노렸을 수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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