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9)제75화 패션 50년|개성미 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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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니, 미디, 맥시의 3M공존으로 요란하게 시작된 70년대도 중반을 지나 후반에 접어들자 최신유행의 맹목적인 추종에서 벗어나려는 한국 여성들의 성숙된 안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히피풍조의 영향으로 집시풍의 모드가 잠시 스쳐가기도 했고「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에서 비롯된 차이니스모드가 한때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또 청바지 선풍이 최고조에 달한 77, 78년 겨울에는 롱부츠라 불린 루즈피트의 가죽장화가 대유행을 보이자 한국패션의 중심지 명동이 『경마장으로 바뀌었다』는 비꼬는 소리가 나돌기도 했다.
때마침 78년이 말띠 해 여서 서부영화의 카우보이나 경마장의 기수들이 신는 것과 같은 긴 가죽장화를 유행따라 다투어 신은 젊은 여성들을 빗대어『경마장 기수들이 말띠 해를 기념해서 명동거리를 행진한다』고 비꼰 것이다.
개중에는 한켤레에 2만∼3만원에서 5만∼6만원까지 하는 값비싼 부츠가 양화점 쇼윈도에 진열될 새도 없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유행과열 현상을 놓고 『쌀 한가마 값을 발에 달고도 무거운 줄도 모른다』고 준열히 나무라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런 사의일각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부츠 안 신으면 간첩』이란 우스개 소리가 나올 만큼 대유행을 보인 이 롱부츠 시비를 고비로 한국의 패션은 나름대로 제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으니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물론 세계적인 모드의 흐름이 일정한 패턴이나 특정 패션의 정착없이 각자 개성미를 추구하는 시대로 접어든 것과도 무관할 수는 없다.
개다가 레이어드만으로는 성이 안차 슈퍼레이어드 라는 말이 등장할 만큼 몇겹식 겹쳐 입는 식의 옷 입음새와 이로 인한 빅 실루엣의 자연스런 유행으로 구태여 남의 눈치볼 것 없이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변화는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오일쇼크로 인한 세계적인 불경기의 여파로 패션계가 타격을 받으면서 의복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념까지 바꾸어 놓기에 이르렀다.
즉 양보다는 질을 추구하면서 실용적이면서도 다양한 변화가 가능한 의복을 찾게 되었다.
예전처림 자신의 체격이나 용모에 어울리건 어울리지 않건. 자신의 경제형편에 맞건 안 맞건 최신유행이라면 무조건 구입하던 어리석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어떤 옷을 사기전에 반드시 그것이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아닌가를 스스로 반문해 볼만큼 지혜로 와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특별한 의상이 필요한 특수직업인이나 꼭 마춤복을 입어야 할 만큼 특이한 체격의 소유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기성복을 택하게 된 것도 80년대를 맞는 우리네 여성들의 의생활에 있어 커다란 변화라하겠다.
이처럼 기성복이 보편화되자 거리에서 똑같은 차림새와 부딪치는 민망함을 덜기 위해 갖가지 소도구가 동원되고 액세서리가 활용되기 시작한 것도 요 2,3년래의 일이다.
여러가지 질감과 소재의 폭넓은 벨트가 다시 등장하고 어린이나 여고생들만 신던 흰색 짧은 양말이 성인모드에 끼어 드는가 하면 각종 스카프가 개성미 연출의 키 포인트처럼 애용되기 시작했다.
겨울 한철 방한용으로 쓰이는 게 고작이던 스카프는 추위를 막는다는 본래 목적보다 그 다양한 색상이나 무늬, 혹은 사이즈로 해서 이옷 또는 저옷에 매치시키는데 따라, 그 매는 방법에 따라 평범하고 유행감각에 뒤떨어진 의상에 다 놀랄 만큼 신선하고 개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줘 요즘에 이르러서는 의상 자체보다 더 큰 효과를 내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드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50년대 말로부터 불과 20년 남짓한 세월동안 비록 수많은 시행착오를 낳기는 했지만 새로운 유행을 자신의 개성에 맞춰 취사선택할 수 있을 만큼 우리 모두의 패션 감각이 성장했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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