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청사진에 전국이 들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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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 정해 선택과 집중 묘 살려야"

'한국을 동북아 허브(중심)로 만든다'.

정부가 추구하는 국가 목표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03년 우리나라에도 싱가포르나 홍콩에 맞먹는 국제도시를 만들겠다며 인천, 부산.진해, 광양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청와대 동북아시대위원회는 이와 별도로 서남해안을 동북아의 허브로 만드는 'S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추진해 왔다. 20년 동안 500억 달러를 유치해 한국의 서남해안을 동북아의 허브로 키워 동남아 허브인 싱가포르와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경제자유구역 중 가장 앞서가고 있다는 인천조차 외국인 투자 유치가 지지부진한 마당에 서남해안에 이 많은 돈을 유치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뿐 아니다. 제주 국제도시, 외국인 전용 단지, 외국인 투자 지역, 자유무역 지역도 있다. S프로젝트를 빼고도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지정된 산업단지는 전국에 무려 26곳이다.

여기에 정부가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기업을 유치해 지방에 건설하기로 한 각종 도시도 전국적으로 22곳에 이른다. 기업도시.혁신도시.지식기반도시(혁신 클러스터) 등이 그런 곳이다. 제각기 유치하겠다는 외국인 투자를 모두 합치면 수천억 달러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나 1962년부터 40여 년간 우리나라가 유치한 외국인 직접투자는 1070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시립대 정창무(도시공학과) 교수는 "이대로 가다간 개발 소문으로 전국의 땅값만 치솟게 할 뿐 정작 외자 유치나 지방도시 건설은 용두사미가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의욕만 앞선 개발 계획=정부는 올해 시범적으로 기업도시 네 곳을 지정하고 매년 한두 곳씩 추가할 계획이다. 이른바 'J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전남 영암.해남을 비롯해 여덟 곳이 기업도시 후보지 지정을 신청했다. J프로젝트는 2016년까지 전남 해남과 영암의 간척지 3200만 평에 복합레저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기업도시의 모델은 일본의 도요타(豊田)시다. 그러나 도요타시는 38년부터 수십 년에 걸쳐 만든 도시다. 투입된 자금도 수십조원에 달했다. 기업도시 참여를 추진한 A기업 관계자는 "기업도시 네 곳을 한꺼번에 추진하겠다는 건 과욕"이라며 "한 곳만 당초 계획대로 성공해도 다행"이라고 주장했다. 이 마당에 청와대는 J프로젝트보다 훨씬 큰 그림인 S프로젝트를 따로 그리고 있다.

혁신도시도 수도권과 대전, 충남을 제외한 전국 11개 광역시.도에 한 곳씩 지정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혁신도시란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그 이전 지역에 기업이나 연구소를 같이 입주시켜 지역 개발의 중추 역할을 맡는 곳이다. 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갈 기업이 그만큼 많을지는 미지수다. 여기에다 기존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한 지식기반도시도 시범사업지만 일곱 곳이나 된다.

◆ 땅값 상승 부채질=기업도시 지정을 신청한 여덟 곳은 이미 땅값이 오를 대로 올랐다. 원주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 후보로 동시에 꼽혀 투기꾼의 표적이 됐지만 3월에야 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정부는 기업도시로 지정될 경우 개발이익을 모두 환수할 방침이다. 그러나 개발이익은 해당 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이 물어야 할 부담만 늘릴 뿐 이미 땅을 팔고 떠난 투기꾼들에게는 물릴 방법이 없다.

◆ 다른 정책과 상충=투자 유치 정책은 수도권 개발 억제 정책과 첨예하게 대립돼 있다. 기업은 수도권에 투자를 원하지만 정부는 국가 균형 발전이란 명분 때문에 이를 풀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자유구역도 균형 개발과 상충되는 측면이 있는 데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이중 간섭, 각종 규제로 투자 유치 실적이 신통치 않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우선 순위 없이 장밋빛 개발계획만 남발하면 땅값만 오른다. 중구난방으로 발표된 개발 계획에 우선순위를 정해 선택과 집중의 묘를 살리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경민.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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