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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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하늘을 향해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스승의 길을 가고자 하고한 날 어렵고 의로운 길 묵묵히 애쓰며 걷고 있던 교사들이었건만 이일을 앞에 당하여 무슨 말을 할수가 있겠는가. 다만 말할수 있는 입을 가진것이 부끄럽고 부끄러울 따름이다.
죄를 가려내어야 했던 담당 수사관이 피해자의 수표를 훔쳐서 전동료 경찰관들을 진흙의 늪속에 빠뜨려 허위적거리게 하고 시민을 보호해야 했던 방범대원이 보호를 요청해온 시민을 욕보여 역시 온동료 방범대원들에게 흙탕물올 끼얹었던 일들에 경악을 금치못하면서도,우리 전교사들은 그래도 우리 교사 사회에서만은 절대 그런 일은 없으리라고 긍지와 자부를 잃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제 우리 전교사가 일제히 땅에 목고개를 박고 무릎을 꿇어 사죄하여 죽은 윤상군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오, 하느님. 제자가 죽을 위험에 직면했을대, 그 위험을 가로막아 대신 죽어야 마땅한 도리를 했다할 스승된 자가 자신의 노름빚과 사원을 위해 어린 제자의 목숨을 자신의 손으로 앗아가다니! 그것도 학생들의 보다 효과적인 지도를 위해 비치해둔 가정환경조사서를 뒤적여가며 대강학생을 물색했다니 참으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어쨌거나 윤상군은 이미 죽어있었다. 윤상군 부모님은 물론 온국민이 그렇게도 살아있기를 염원했지만 1년 17일을 윤상군은 차가운 땅속에 묻혀 있었다.
14살 꽃봉오리로 무참히 꽃모가지 꺾인 윤상군이여, 그리하여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을 윤상군이여, 이 더러운 지상, 이 더러운 어른의 손을 떠나 아름다운 천상에서 고이 어여쁜 생명의 눈을 뜨거라. 그리고 지상에서 빼앗긴 복을 다시찾아 누리고 오래오래 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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