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조적인 세수 부족 … 증세 말고 답이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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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올해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또 불명예스러운 신기록을 세우는 장면을 볼 게 분명하다. 바로 세수 부족액이다. 지금까지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8조6000억원이 최고였다. 지난해엔 간신히 8조5000억원으로 막았으나 올 세수부족액은 9조원을 넘어 1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7월 말까지 국세청이 거둔 세금은 119조원으로 국세진도율이 사상 처음으로 58.2%에 그쳤기 때문이다. 정부는 또 10조원대의 적자국채 발행을 피할 수 없다.

 정부의 해명은 달콤하다. 예상보다 경기가 나빠 법인세·부가가치세가 덜 걷힌, 일시적 현상이란 것이다. 당초 3.9%로 잡았던 경제성장률은 실제 3%대 중반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 연속의 세수부족 사태라면 보다 냉정한 진단이 요구된다. 구조적인 문제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과연 내년은 어떨까. 정부는 경제성장률 4%로 잡고 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국내외 예측기관들은 3.6%의 보수적 입장이다. 여기에다 국내 간판기업들의 실적은 악화일로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조원 줄어들면 내년에 낼 법인세는 1조원 이상 감소한다.

 나라살림이 구조적인 빚더미에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덜 걷히는 세금에 비해 복지비용이 빠른 속도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장밋빛 전망의 자기최면에 빠져 경기회복만 기다리는 천수답 신세로 있을 순 없다. 이미 나라빚 이자로 나가는 돈만 한 해 21조원이나 된다. 이런 추세라면 나라빚 이자가 무서워 제로금리를 고집했던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가게 된다.

 재앙을 피하려면 지금부터라도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 확대’라는 잘못된 공약부터 사과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원칙의 리더십은 솔직함에 기초해야 한다. 그 다음, 지나치게 팽창한 복지비용을 과감히 교통정리해야 할 것이다. 당장 과도한 무상급식·무상보육 때문에 이번 겨울방학부터 저소득층 아이들이 점심을 굶게 되는 기막힌 현실을 맞이하지 않는가. 야당 또한 이를 ‘공약 파기’로 몰아세우는 정치공세는 삼가야 한다. 뒤집어 보면 야당이 집권했다면 세수 부족액은 훨씬 커졌을 것이다.

 복지재원을 감당하려면 질서 있는 증세 외에는 길이 없다. 지금처럼 꼼수 증세로는 어림없다. 세무조사로 쥐어짜봐야 2~3% 세금이 더 걷힐 뿐이다. 조세저항을 막으려면 공평하고 투명한 증세가 핵심이다. 우선 국민개세(國民皆稅)원칙에 따라 모든 국민이 소액의 세금이라도 내도록 세원을 넓히고, 탈세 가능성이 큰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징세 강화 방안부터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증세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예방할 수 있다. 그 다음 누더기가 된 비과세·감면조항들을 대폭 정비하고, 2008년 금융위기 때의 감세를 다시 복원시키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래도 세수부족이 빚어지면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의 단계적 인상 방안을 마련해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