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갈취수법으로 수억 뜯어낸 조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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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LG 등 대기업 직원들의 술자리를 몰래 지켜본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신 직원이 차를 타면 곧장 따라가 고의로 사고를 낸다. 문신과 전자충격기를 내보이며 "합의하자. 아니면 회사나 경찰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돈을 빼앗는다. 대구·경북 지역 조폭들이 새로 고안해낸 갈취 수법이다.

경북경찰청 광역수사대는 8일 대기업 지방 공장이 밀집한 경북 구미시에서 상습적으로 접촉사고를 유발한 뒤 돈을 뜯어낸 혐의(상습 공갈)로 경북 구미시 인동파 이모(31)씨 등 34명을 붙잡아 11명을 구속하고 2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34명 중 7명은 인동파와 경북 영천시 우정파, 대구시 동성로파 조직원이었다.

이런 식이다. 모 대기업 지방 공장 관리직원인 김모(31)씨는 2012년 10월 경북 구미시 진평동의 한 식당에서 회식을 한 뒤 음주운전을 하며 숙소로 가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기 위해 멈추자 갑자기 "쿵"하는 충격이 전해졌다. 뒤따르던 렉서스 차량과 접촉사고가 난 것이었다. 팔 등에 문신을 한 이씨 등 3명이 차에서 내려 "회사에 알리겠다. 인사상 불이익이 있지 않겠느냐"며 돈을 요구했다. 결국 다음날 1300만원을 송금했다.

이렇게 조폭들은 2010년 4월부터 지난 7월까지 59차례에 걸쳐 1억7000만원을 갈취했다. 또 차량 수리비로 보험사로부터 29차례에 걸쳐 1억원을 받아냈다. 경찰은 은행 송금 내역과 보험사의 수리비는 확인했지만 사고 현장에서 바로 주고받은 돈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범행은 치밀하고 조직적이었다.

2명이나 3명씩 조를 꾸려 물색조, 사고 유발조로 역할을 나눴다. 먼저 물색조가 식당과 유흥업소가 많은 구미시 인동과 옥계 등에 잠복하며 범행 대상을 골랐다. 물색조가 "대기업 직원이다. 저 차와 사고를 내라"고 신호를 주면 미리 교차로 부근에 대기하고 있는 사고 유발조가 뒤를 따르다가 접촉사고를 내는 식이었다.

식당 등에 주차된 차량을 확인하고 먼저 전화를 걸어 "차 좀 빼달라"고 한 뒤 차에 타면 슬며시 접촉사고를 내기도 했다. 차량 수리비를 더 받기 위해 BMW·아우디·렉서스 등 수입차를 타고 다녔다.

경찰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며 동네 후배들을 새로운 공범으로 계속 가담시켜 수 년간 범죄 행위를 이어왔다"며 "조폭들의 새로운 범죄 유형이 드러난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캐고 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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