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리더십'은 현대의 CEO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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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8일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1598) 장군의 4백58회 탄신 기념일이다.

이를 앞두고 25일 서울 종로구청과 교보생명은 서울 세종로 충무공 동상에 쌓인 먼지와 매연을 고압 세척기로 씻어냈다. 문화재청은 28일 오전 11시 충남 아산 현충사에서 기념식을 거행할 예정.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소장 권순용.041-530-1632)는 28일 오후 1시40분 이 대학 향설기념중앙도서관 5층 세미나실에서 충무공 탄신 제458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세미나를 열 예정인데 'CEO로서의 이순신에 대한 재조명'이라는 주제가 관심을 끈다. 그 의미와 발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한 최고경영자(CEO)로 재해석된다. 그간 정치.군사적 측면에서의 조명을 통해 이순신을 전통적 충효사상의 화신으로 자리매김해 온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의 경영학적 재조명이다.

이순신에 대한 자유로운 재해석은 문학과 경영학 분야에서 선도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가 '칼의 노래'란 소설을 통해 이순신의 인간적 측면을 조명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활기를 띠는 이순신에 대한 경영학적 재조명은 주로 위기관리 능력과 결단의 리더십 차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에서 개최하는 학술 세미나는 그간의 이순신에 대한 자유로운 재해석을 중간 점검하는 성격을 갖는다.

이순신연구소의 권순용(신문방송학과 교수)소장이 "위기관리 측면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통해 시대간.지역간.종교간 갈등구조를 해소하는 방식을 조명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 세미나에서 주목되는 글은 김용하(순천향대 경제금융학부) 교수의 '위기관리 측면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 연구'다.

우선 서구의 최신 경영학 이론을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소화해 내려는 접근법이 돋보이고, 또 단순 리더십 차원이 아니라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위기관리 리더십'이란 용어로 이순신의 리더십을 정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교수는 "이순신은 시대 상황의 변화를 세계적 안목에서 유연한 자세로 인식하고, 전체를 보는 통합적 사고로 조직 내외의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데 매우 우수한 리더십 역량을 보였다"고 정리한 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사즉생의 리더십을 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명령 복종이라는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이순신이지만 정유재란 때 조정의 무리한 공격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명령에 복종하면 조선의 해군이 궤멸될 것이 뻔히 보이고, 명령에 불복하면 반역죄로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순신은 명령 불복을 선택했고, 그의 판단과 선택이 옳았음은 원균의 실패에서 증명되었다고 김교수는 말한다.

소설가 김훈씨가 '인간적 측면에서의 이순신의 리더십'이란 글에서 제기한 '전환의 리더십'도 눈여겨 볼 만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상황은 군사력의 열세, 굶주림, 행정관료의 부패 등이 겹쳐 있었다. 하지만 충무공은 절망적인 역경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어 지도자적 자질을 보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충무공은 정치적 불운과 박해를 백의종군의 형태로 전환시켰으며, 군사력의 열세에서 우세로, 수세에서 공세로, 죽음에서 삶으로 끊임없이 전환해 나갔다"면서 "이 대목이 가장 강력하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이 전환의 힘이 발휘된 한산도 싸움에서의 압도적인 승리와 명량 싸움이 그 절정이었다는 평가다.

김현기(경기대 정치전문 대학원) 교수는 '이순신의 군사적 리더십에 관한 현대적 조명'을 발표한다.

김교수는 "충무공이 통제사 재임명을 받고 말을 달려 전라도 곡성(谷城).옥과(玉果) 지대를 지나오다가 길에서 피란민을 만났을 때 취했던 태도를 주목해야 한다"면서 이를 세 마디로 요약해 냈다.

즉 "첫째 말에서 내려서(下馬), 둘째 손목을 잡고(握手), 셋째 타일렀다(開諭)"는 것인데, 이 대목에서 "이순신의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교수는 또 "이순신은 운주당(運籌堂)이란 참모본부를 설치해 놓고 거기서 장병들과 함께 자고 토론하며, 비록 부하 병사들이나, 심지어 종들의 의견까지라도 좋은 것이 있으면 채택했다"면서 "무슨 주의라는 이름이 붙지 않은 참 민주주의의 실천자였다"고 밝혔다.

배영대.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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