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 "산불 난 날 골프 죄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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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회에서 늘 꼿꼿한 자세를 고수하던 이해찬(얼굴) 국무총리가 11일 몸을 낮췄다. 지난 5일 강원도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한 시간 골프를 친 것과 관련해서다. 이 총리는 이날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의원들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였다.

열린우리당 이호웅 의원이 '식목일 골프' 문제를 언급하자 이 총리는 "이 자리를 빌려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이한 판단을 했기 때문에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 드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근신하겠다"고 했다.

수준급의 골프 실력을 지닌 이 총리와 이 의원은 정치권에서 골프 친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여권에선 "이 의원이 야당 의원들의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첫 번째 질문자로 나서 결과적으로 이 총리를 도왔다"는 얘기가 나왔다.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대한 이 총리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 순순했다.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은 "이 총리가 사과하는 겸허한 자세를 보인 것은 총리의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며 '뼈 있는' 칭찬을 했다. 이어 이 의원이 "총리가 식목일에 골프를 한 것은 잘못됐다"고 하자 이 총리는 바로 "예"라고 답했다.

같은 당 김문수 의원은 공세의 수위를 더 높였다. 그는 "강원도 산불과 관련해 총리 본인이 골프를 하고 있어서 아랫사람들을 문책할 수 없었던 것 아니냐"며 "기본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깨끗하게 사퇴하는 게 낫다"고 이 총리를 몰아붙였다. 과거 같으면 발끈했을 이 총리는 "사퇴는 현명한 자세가 아니다"며 "책임지고 사태를 수습하고 국민을 위해 더 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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