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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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역간된 「마야코프스키」전기 속에서 흥미로운 마지막 대목을 만났다. 1930년, 권총으로 그가 자살하자 러시아 작가 동맹은 그의 시와 인간됨을 혹평했고 이에 분격한 그의 애인이 「스탈린」에게 항의를 하자 이 독재자는 이 뛰어난 시인의 학대는 「범직」라고 선언한다.
돌연 사태는 바뀌어 곳곳의 광장에 「마야코프스키」의 이름이 붙여지고 그의 시 낭독회가 열리며 그의 시집들은 날개돋친듯 팔렸다.
몇년후 그의 후배이며 역시 뛰어난 시인인 「파스테르나크」가 자서전을 쓰면서 바로 이 대목에 이르러 「캐더린 황제때의 감자처럼 강제적으로 선전된 마야코프스키」는 「두번째 죽음」을 당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마야코프스키」의 애인 역시 이 험담을 서운해하면서도 강제 선전이 그의 시에 해를 끼쳤음을 시인하고 『강요받은 학생들은 오히려 그때부터 그의 시를 읽기를 윈치 않았다』고 술회한다.
이 당연한 에피소드가 그러나 자주 우리들에게 잊혀진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읽기 싫은 책이 물론 교과서이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숨어 읽는 책들이 연애소설이다. 그것은 교과서가 좋은 책이고 연애소실이 해로울 수 있다는 사설을 학생들이 몰라서가 아니고, 또 그들의 근본 성향이 포악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강요받는 책을 싫어하고 보지 말라는 책을 읽는 것에는 이 세대들의 장기인 반발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반발심리는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할 깊은 뜻을 품고 있다. 나쁜 것에의 유혹은 일종의 성인식과 같다. 사춘기 새대들은 유년기부터 배워온 모범성에의 권고, 철들면서 부여받는 공적 교육이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되며 그들에게 금기된 다른 세계에 대해 당연한 호기심을 갖는다. 말하자면 이 세계의 그늘진 부분을 발견하고자 하면서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악덕을 보게 되는 것이다.
공격교육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것으로 가리워진 음흉한 정열의 열기도 강해진다.
이 갈등을 통해서 그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무지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나쁘다는 것을 잘 알게되기때문에 악을 극복할수 있게 되며 그래서 모범적인 시민으로 기성사회에 편입할수 있게 된다.
또 공적 교육에 위선이 더 많고 현실과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학생들의 공적 교육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지고 그것이 금기하는 지식과 사고에 더 많은 진실성을 부여한다. 사후의 「마야코프스키」가 해를 더 크게 입은 것은 「스탈린」이 존경받는 사람이 못되었기 때문이며 그가 내세운 명분이 실제와 어긋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과연 믿을 수 있는 통치자였다면 「마야코프스키」가 그처럼 학대받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며 그가 「두번 죽을」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세대가 원하지 않는 어떤 책이 많이, 그리고 숨어 읽히는 데에는 그것을 읽는 사춘기 세대들을 야단치기전에 그렇게끔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가 먼저 반성하고 책임져야 할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문학평론가> ▲38년 대전출생 ▲서울대문리대 정치학과졸업 ▲한국기자협회장 ▲저서 『지성과 반지성』『한국문단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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