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이집트에 살아 숨쉬는 '포니 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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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인구 1500만 명이 북적대는 이집트 카이로 도심. 거리마다 누비는 택시 가운데는 포니가 심심치 않게 띈다. 원래 모습은 사막의 바람에 많이 바랬지만 포니 택시는 카이로 전역을 힘차게 누빈다.

"포니! 최고지요. 기사들은 이 차를 개코라고 부릅니다. 기름 냄새만 맡고도 가니까요." 포니1 택시를 15여 년째 몰고 있는 타리크(45)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이제 많이 낡았지만 그동안 이 차가 아낀 기름값이 차 값을 훨씬 뛰어 넘었을 거예요." 타리크는 아직도 포니1이 사랑스러운 듯 연방 차체를 쓰다듬는다. 그가 15여 년 전 10년이나 된 중고 포니1을 구입할 당시 가격은 약 450만원선. 그러나 그는 "지금도 족히 1만~1만5000파운드(200만~300만원)는 받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차체가 튼튼하고 기름 소모량이 적어 아직도 택시기사들의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22일(현지시간) 카이로 시내의 서민지역인 사이다 알자이납. 이곳 무니라 거리에는 포니만을 전문 수리하는 작은 정비소가 있다. 정비소 입구에는 포니의 마크인 조랑말이 'HYUNDAI'(현대)라는 영어글자 위에 장식돼 있다. 정비소 앞에는 세 대의 포니가 수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비소 주인 아흐마드(53)는 "이제 부품을 구할 수 없지만 포니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20여 년 넘게 포니를 정비해온 그는 "지나가는 포니만 봐도 차의 상태를 짐작한다"고 말했다. 카이로에 굴러다니는 약 5000대(추정)의 포니 승용차 중 상당수가 그의 가게에 의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두색 포니2를 수리하러 온 움무 왈리드는 "웬만한 부품은 다른 차의 비슷한 부품을 가져와 깎고 다듬고 해서 끼워준다"고 치켜세운다. "이 차를 탄생시킨 분(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어제 작고하셨다"고 알려주자 움무 왈리드는 "그의 정신이 여기에 남아 있다"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 구입한 포니2가 우리 가족의 보물 1호"라며 "이 차로 아이들을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실어 날랐다"고 밝혔다.

이집트는 70년대 말부터 80년 중반까지 포니1과 2를 수입했다. 정확한 수입 대수는 남아있지 않지만 상당수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포니 수입을 독점한 '기자 모터스'라는 회사는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다른 차를 수입한 뒤 실패해 10여 년 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래도 이집트에서의 '포니 신화'는 계속되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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