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字, 세상을 말하다] 雨傘<우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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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27면

중국 최고 권위의 건축상은 노반장(魯班奬)이다. 프리츠커상이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면 노반장은 중국의 프리츠커상이다. 노반(魯班)은 중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다. 본래 성은 공수(公輸), 이름은 반(盤)이다. 춘추(春秋)시대 노(魯)나라 장인(匠人) 집안에서 태어났다. 중국 토목산업의 시조이자 최고의 발명가로 추앙받는다.

그는 초(楚)를 위해 당시로서는 첨단 무기인 공성용 사다리 운제(雲梯)를 발명했다. 송(宋)을 공격할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에 평화주의자인 묵자(墨子)가 초나라로 달려갔다. 초왕은 막무가내로 침공을 고집했다. 묵자는 모의 전투를 제안했다. 아홉 차례 싸움에서 묵자가 모두 노반을 꺾었다. 묵자는 제자 300명이 이미 송나라 방어 준비를 마쳤으므로 자신을 죽여도 송을 취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해 전쟁을 막았다.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지킨다는 묵적지수(墨翟之守)의 고사다.

우산(雨傘)도 노반의 발명품이다. 노반이 어느 날 부인 운(雲)씨와 외출하고 돌아올 무렵 비가 쏟아졌다. 부부는 마침 정자를 발견해 비를 피했다. 운씨가 “정자를 많이 세워야겠다. 행인들이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질 테니”라고 말했다. 정자를 응시하던 노반은 돌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방법이 있다. 정자를 들고 나가면 될 터”라고 말했다. 부인은 갸우뚱했다. 집에 돌아온 노반은 며칠 만에 산(傘)을 만들었다. 뛰어난 장인이었던 노반의 부인이 햇볕과 비바람 아래에서 작업하는 남편을 위해 이동형 정자 격인 우산을 만들어줬다는 버전도 전해 온다.

최근 홍콩인들이 우산을 펼쳐들었다. 경찰의 최루액을 민주화 시위대가 우산으로 막자 외국 언론이 ‘우산혁명’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치는 민심을 따르는 데서 흥성하고, 민심을 거스르는 데서 쇠망한다(政之所興在順民心, 政之所廢在逆民心).” 명재상 관중(管仲)의 말이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연설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오랫동안 정치 결핍 사회였던 홍콩이 변화하고 있다. 발명가 노반의 후예다운 참신한 결말을 기대한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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