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문제] 천안 5산단 폐기물 매립장 법정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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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시의 안일한 행정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단지 용지 분양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다.

업체와의 소송으로 인한 행정력 낭비에 소송 비용까지 떠안게 됐다. 행정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

소송을 제기한 업체도 사업 중단으로 피해를 봤다. 천안 5산업단지 폐기물 매립장 용지 분양 과정과 문제점, 소송 결과를 짚어봤다.

천안시와 ㈜케이티건설산업이 소송 중인 5산업단지 폐기물 매립장 조성 부지

“1심 판결을 취소한다. 천안시가 업체에 통보한 천안 5산업단지 입주(분양) 계약 해지는 무효임을 확인한다. 소송 비용은 천안시가 부담한다.”

 천안시가 ㈜케이티건설산업에 통보한 천안 5산단 폐기물 매립장 용지 계약 취소에 대해 재판부가 내린 결론이다. 대전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정선재 판사)는 지난 19일 5산단 매립장 용지 계약 취소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시는 2011년 업체와 101억3500여 만원의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업체는 계약금으로 두 차례에 걸쳐 10억1300여 만원을 지불했다. 이후 업체는 중도금을 두 차례 납부하지 않았다. 해당 용지에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업체가 해당 용지에 대한 위치 변경을 협의하려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반대하자 시는 중도금 미납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업체는 시를 상대로 ‘계약 해지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학교보건법 저촉 몰랐다

지난해 5월 31일 1심에서는 천안시가 승소했다. 1심 재판부는 용지 분양 계약 후 중도금을 내지 않은 업체에 대해 시의 계약 해지 통보가 적법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2심 결과는 달랐다. 2심 재판부는 1심의 판결이 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2심 재판부 판결의 핵심 내용은 이렇다. 업체가 중도금을 납부하지 않은 것은 시가 분양한 용지 위치와 연관이 있는 만큼 위치 변경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계약 해지를 통보한 건 적법하지 않다는 게 골자다. 시가 산업단지 주변 여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이 법적 공방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됐다.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할 수 없는 땅을 업체에 분양한 것이다.

천안시는 ㈜케이티건설산업에 산업단지 입구에 있는 토지를 분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금강유역환경청이 매립장 시설(에어돔) 설치로 예상되는 경관 변화를 예측한 결과, 당초 위치가 아닌 금강유역환경청이 제시한 폐수처리장 옆 토지(지원시설용지)를 업체에 분양했다. 하지만 해당 용지는 천남중학교와 불과 132m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다. 이 사실을 시와 금강유역환경청 모두 알지 못했다. 학교보건법(제6조)에는 학교 경계선이나 학교 설립 예정지 경계선으로부터 200m 이내에서는 폐기물처리시설을 할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고, 급기야 매립장 조성을 취소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시의 안일한 행정이 시와 업체, 주민 간 갈등과 피해를 키웠다.

㈜케이티건설산업은 광역 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단지에서만 나오는 폐기물만 처리하면 수익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할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하지 않을 수도 없다. 시가 같은 규모로 직접 매립 시설을 설치할 경우 400억원 이상의 사업비를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주민들이 폐기물 매립장을 반대하는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천안시 마땅한 대책 없이 상고

시는 매립장이 설치되면 외부 폐기물을 반입하지 않기로 주민과 약속했지만 업체와의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뾰족한 대안도 찾지 못하고 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업체도 사업 중단과 소송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시가 폐기물 매립장을 조성할 수 없는 땅을 분양해 놓고 민원이 발생하자 중도금을 내지 않는다며 계약 해지를 통보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케이티건설산업 관계자는 “사업이 원활히 추진됐다면 지난해 3월부터 정상 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시가 사용하지도 못할 용지를 분양해 놓고 중도금을 내지 않는다며 계약 해지를 하는 바람에 사업이 중단됐다”며 “이로 인해 발생한 설계 및 금융 손실금이 30억원에 이른다. 더 이상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민 설득과 함께 책임을 가리기 위한 모든 법적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시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주민 의견을 수렴해 대법원에 상고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기존에 시가 주장한 내용이 달라진 건 없지만 1, 2심의 재판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향후 법적 대응방안을 찾겠다. 현재로서는 업체와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다른 대책은 없다”고 밝혔다.

글=강태우 기자 , 사진=채원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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