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 전 중정부장 파리서 납치 양계장 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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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사진) 실종 사건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증언이 나왔다고 시사저널이 11일 보도했다.

시사저널은 전 중앙정보부 특수공작원 출신이라는 사람의 말을 인용해 "김씨는 당시 파리의 한 레스토랑에서 납치된 뒤 인근 양계장의 분쇄기에 넣어져 살해됐다"고 밝혔다. 그의 정체는 중앙정보부가 양성한 특수 비선 공작원 이모씨로,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파견돼 특수 암살훈련을 받은 곽모씨와 한 조가 돼 김씨를 암살했다고 증언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침투 루트, 지형지물, 살해방법을 털어놓았고 증언에 일관성이 있었다고 이 주간지는 전했다. 그는 자기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당시의 사건 전반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현장 사진 등 뚜렷한 물증이 없어 이씨 주장이 100%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당시 해외 파트에 근무했던 일부 중정요원들에게 그의 증언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한 결과 "특수활동을 했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렇게 자세히 알기 어렵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시사저널은 전했다.

암살 실행팀장 이씨는 시사저널과의 일문일답에서 "김씨가 당시 미국에서 혼자 파리로 온 것은 유인조인 여배우를 만나기 위해서였으며, 그 여배우는 나중에 이용당한 것을 알고 충격을 받고는 경영하던 술집도 선배 여배우에게 넘겼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여배우는 "나는 김형욱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씨는 "1979년 10월 7일 밤 우리 두 사람은 파리시내 한 카지노에 딸린 레스토랑 앞에서 약간 술이 오른 김씨를 마취시켜 미리 답사해둔 파리시 북서쪽 4~5㎞ 외곽의 한 양계장으로 차를 몰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양계장 사료 분쇄기를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다른 감상은 없었다. 1년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했고, 일이 잘못돼 붙잡힐 경우 현장에서 자결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고 시사저널은 주장했다.

국가정보원의 한 관계자는 "시사저널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과거사 진상조사 차원에서 진위를 판단하고, 조사 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는 이 같은 주장의 진위를 판단할 수 없어 향후 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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