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타자도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달자 긴장됐다고 했다. 박병호(29·넥센)가 22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4타수 2안타 1타점. 완벽하진 않았지만 첫 경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었다.
박병호는 첫 타석에서 태국 선발 시하맛 위사루트의 3구째에 헛스윙을 했다. 너무 느려서였다. 시하맛이 던진 슬라이더의 속도는 시속 106㎞로 집계됐다. 직구도 120㎞ 정도로 느렸지만 변화구는 더 느렸다. 풀카운트 승부에서는 두번째 헛스윙을 해 삼진까지 당했다. 이 공 역시 105㎞였다. 평소 프로무대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만 상대하던 박병호에게 낯선 스피드였다. 국제대회에서 이런 일은 흔하다. 2010년 광저우 대회에 나선 추신수(32·텍사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추신수는 공이 채 도착하기도 전에 스윙을 한 뒤 "너무 느려서 잘 맞지 않더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박병호는 두번째 타석에서도 3루수 땅볼을 친 뒤 실책으로 걸어나갔다. 투구 속도에 배트 스윙 궤적을 맞추는 게 어려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당할 박병호가 아니었다. 3번째 타석에서 박병호는 초구 볼을 침착하게 고른 뒤 두번째 공을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맞히는 1타점 2루타를 때렸다. 이번에도 다소 스윙이 빨랐지만 방망이에 잘 맞췄다. 마지막 타석은 더욱 깔끔했다. 좌익수 앞으로 날아가는 직선타구로 두번째 안타를 만들었다. 박병호는 경기 뒤 "상대를 무시한 건 아니었고, 처음 상대해서 그랬다. 삼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다음 타석에서 더 잘하려고 마음먹었다"고 웃었다. 그는 "처음 대표팀에 발탁 돼 떨렸지만 안타가 나오면서 긴장이 풀렸다. 전력 차이가 있었지만 진지하게 경기에 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이번 대회에서 어깨에 큰 짐을 지고 있다. 류중일 감독도 대회 전 타순 공개를 꺼리면서도 "4번은 박병호"라고 하며 주장을 맡길 정도로 강한 믿음을 보냈다. 박병호는 "상대 전력이 강하지 않아 무게감이나 부담은 없었다. 잠도 잘 잤다. 몸을 풀 때나 선수 소개가 나올 때 긴장하긴 했지만 금방 풀렸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 첫번째 고비인 대만전(24일)을 앞두고 있다. 박병호는 "오늘과는 전혀 다른 경기가 될 것이다. 투수도 강하고 빠른 공을 던지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해야할 것 같다. 전력분석 영상도 한 번 봤는데 더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인천=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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