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난방비 0원, 끝없는 아파트 관리비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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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최근 며칠 동안 시중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가 ‘김부선 아파트, 난방비 0원’이다.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폭행에 연루됐는데, 이 사건이 김씨가 관리비 중 난방비와 관련된 의혹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난방비 이슈가 불거졌다. 김씨가 2년여 전 난방비가 과도하게 청구된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난방비 관련 조사를 벌이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가운데 폭행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김씨는 폭행피의자로 지목되고 있는데도 시중에선 김씨를 편드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 관리비에 대해 누구나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는 해묵은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주기적으로 아파트 비리 단속을 벌이고, 그때마다 비리 사실을 대거 적발하는 일이 반복된다. 아파트 보수공사나 용역개발 계약담합과 수의계약 과정에서 특혜성 밀어주기로 뒷돈을 챙기고, 주민자치기구인 입주자대표자회의나 부녀회가 관리비에 손을 대는 사례가 가장 흔하다. 지난해에도 서울시는 아파트 비리 77건을 적발했고, 경찰은 지난해 하반기에만 관리비 비리에 연루된 입주자 대표 등 399명을 사법처리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인천 등지에선 조직폭력배가 아파트 관리에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는 등 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잡음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특히 이번 김씨가 제기한 ‘난방비 0원’ 의혹은 아파트 관리비 문제에서 처음 제기된 사례다. 이는 관리비 유용뿐 아니라 개별 가구에 청구되는 관리비 자체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하게 청구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김씨가 사는 옥수동 아파트의 경우 27개월 동안 난방비가 0원 나온 건수가 300건에 달하고, 그중 10가구는 6건 이상 0원을 기록했다. 열량계는 2008년 전면 교체됐으므로 아직은 교체주기도 아니다. 그러므로 불량 계기를 납품 받았거나 계기를 조작한 의혹이 당연히 일어난다. 어떤 경우라도 시급해 해결해야 할 생활불편이다.

 한데 한 주민이 2년반이나 난방비 의혹을 홀로 조사하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았다. 지자체는 경찰에 미루고, 경찰은 5월에 수사의뢰를 받고 지금까지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이 일로 주민들 간에 폭행사건이 일어나고, 폭행 주체가 유명 여배우여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까지 미뤄뒀던 것이다. 김부선씨가 아니었다면 언제까지 묻혀 있거나 흐지부지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에 경찰도 유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항간에서 일어날 정도다. 그러나 경찰 측은 “지자체 의뢰 사건이어서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야 입주민이 열량계를 조작한 모럴 해저드가 있었는지 여부와 관리사무소가 연루된 비리인지를 놓고 수사에 들어갔다. 아파트 관리비 감시는 이제 지자체의 일회성 이벤트로 끝낼 일이 아니다. 관리비 사용뿐 아니라 청구의 투명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도 새로운 감시 방안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