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시베리아부터 인도까지 … 2만5000㎞ 신화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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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유라시아 신화 기행
공원국 지음
민음사, 460쪽
1만8000원

『유라시아 신화 기행』은 여행기이자 신화집이다. 2만5000㎞를 달렸기에 얻게 된 결과물이다. 유라시아의 4대 권역-시베리아·오리엔트·중원·인도-를 누비는 가운데 우정이나 혁명 담론 같은 것들이 교차한다. 신화의 현재적 의미도 여러 방향에서 고민했다.

 유라시아라는 최대 대륙과 신화라는 방대한 인문적 기록을 한 데 엮었다. 저자는 독자들이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미안하게 생각한다. 웬만한 콘텐트 밀도(密度)의 책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다독가(多讀家)가 좋아할 책이다.

 출판업은 상당 부문 ‘제목 비즈니스’다. 제목에 끌림이 있으면 책을 사게 되고 읽게 된다. 그러나 콘텐트가 약하면 내용을 제목으로 포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울란바토르의 인사법’ ‘이야기의 바다­-구제주 아바이 게세르’ ‘국가와 신(神)’ 등 책 속의 120여 개 제목에는 시선을 납치하는 콘텐트의 힘이 있다.

 『햄릿』은 아포리즘의 연결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유라시아 신화 기행』도 멋있는 말들이 꼬리를 문다. 중간 중간 생각을 청하는 말들도 많다. 이런 말들이다. “길이 끊어지면 이야기가 끊어지고, 이야기가 끊어지면 반지혜(反智慧)가 나온다.” “늦게 출발해서 빨리 커지는 도시의 이면은 대체로 비슷하다.” “더 좋은 공동체가 더 많은 아이들을 낳는다.”

 책 표지 한 귀퉁이에 ‘여행하는 인문학자’라고 적혀 있다. 이 책에는 반(半)학술적(semi-academic) 기질이 숨어 있다. 미주(endnotes)를 보면 저자가 체렌 소드놈의 『몽골민간신화』에서 『숫타니파타』까지 최소 40여 권의 관련 서적을 깐깐하게 소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책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서울대 학부에서 동양사를, 동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중국학을 전공한 저자 공원국은 평등주의·평화주의를 옹호하는 인물인 것 같다. 그는 문자 이전(以前)이건 이후(以後)건 신화에 담긴 지혜는 동등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문자를 무기로 삼았던 승자들의 ‘기록 폭력’을 기록했다.

 아쉽게도 유라시아 중에서 서유럽·동남아가 제외됐다. 집필 동기 중 하나인 서구가 자행한 ‘변방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는 게 더 시급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의 꿈은 “한글을 쓰는 사람, 특히 이 땅의 어린아이들을 이야기의 강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가 안내하는 이야기의 강에 『유라시아 신화 기행2-서구·북구편』도 포함될 거라 기대해본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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