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과 의회의 헤비급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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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레이건」대통령의 사근사근하면서도 뿌리치기 어려운 설득 앞에 30년 유대인 로비가 무너졌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 판매문제를 놓고 「레이건」은 승산 없었던 하원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전력으로 상원을 공략하여 마침내 사태를 역전시켰다.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AWACS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레이건」이나, 그렇게되면 오히려 이스라엘의 안보가 위협을 받아 중동의 세력균형이 파괴된다는 반대파 의원들의 주장은 8개월째 팽팽한 공방전을 벌여왔다.
1백명의 상원의원중 처음부터 「레이건」의 주장에 동조한 사람은 40명을 넘지 못했다. 대세가 크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건」은 그의 구상대로 상원의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무기판매안을 힘껏 밀고 나갔다. 「레이건」은 연일 상윈의원들을 교대로 백악관으로 초청해 두손을 꼭 잡고 『나는 당신이 필요하오. 미국이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소』라고 설득했다. 「레이건」 의 설득 앞에 반대 혹은 미정 의원들이 하나둘 지지쪽으르 돌아섰고 마지막 의회 찬반토론에서 4명이 태도를 바꿔 판매안에 찬표를 던졌다.
막강한 이스라엘 로비활동도 대통령 못지않게 판매저지에 결사적이었다. 이스라엘 로비의 가장 큰 특색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서도 대단한 효과를 거두는데 있다.
얼마전 「탠·로스텐코스키」하원의원은 「레이건」 에게 반대표를 던지고나서 그 이유를 귀찮은 이스라엘 로비스트들이 더이상 사무실에 찾아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로비활동이 얼마나 끈질겼던가를 짐작케하는 발언이다. 앞으로 이스라엘 로비들이 이번 패배를 어떻게 만회할 것인지 주목거리인데 이번을 계기로 무소부지하던 그들의 활동도 제약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상원은 현재 공화당이 53석으로 다수당이고, 민주당이 46석, 무소속이 1석이다. 숫자로만 보면 「레이건」 의 공화당이 과반수이기 때문에 「레이건」의 모든 계획은 별로 차질이 없을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의원들은 대통령과 같은 당소속이라고 해서 행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지지한다거나, 반대당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부표를 던지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공화당의원 중에서 12명이 「레이건」 에게 반대했고, 민주당에서도 11명이 「레이건」 을 지지했다. 정책 그 자체에 대한 의원 각자의 정치적 판단이 행동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찬반세력간에 활발한 토론을 통해 문제의 전모를 드러내고 투표로써 가부를 결정하고 그 결과 소수는 다수를 따른다는 미국식 의회정치의 한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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