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결위 추경 삭감싸고 당.정 불협화음|기획원이 민정 소외시키고 야당과 「직거래」한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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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1년도 추경예산안에 대한 정부-야당의 직거래합작 삭감이 정부-민정당간의 관계에 냉기를 몰아오고 있다.
정부-야당의 직접협상은 추경예산에 대한 줄다리기가 벌어지던 30일 자정에서 1시30분사이에 일어났다. 예결위는 29일밤 10시50분쯤 추경에 대한 질의를 끝내고 계수 조정에 들어갔다. 추곡수매가 문제로 민정당의 요구에 빡빡한 자세를 보였던 경제기획원측은 당초 민정당에 14억원의 삭감선을 제시했다.
이종찬 총무.정재철 예결위원장등은 이 삭감선을 놓고 협의결과 『14억원으로 생색이 날게 없다』는 결론을 얻고 일단 원단통과를 당방침으로 정했다.
자정쯤 정위원장, 박익주 민정.임종기 민한.이성수 국민당등 3당간사, 기획원의 최창락 차관, 김용한 예산실장이 예결위 회의장내에 소회의실에서 1차조정에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3당은 원안통과에 의견접근을 보여 각각 소속당과 협의키로 했다. 의원들도 한시름 놓고 의원식당에서 라면을 들며 환담을 나누는등 한가로운 표정들이었다.
당측의 지시가 있었던지 임 민한간사는 두 번째 모임에서 갑자기 법무부 예산중 보호감호소 시설비 1백32억원의 삭감을 들이댔다. 임의원은 81년 본 예산에는 감호소비용이 한푼도 없는데 이미 짖고 있는 감호소 3동의 공정이 80%나 진척된 이유는 무엇이며 본예산에 비목이 없는데 어떻게 추경에 반영하느냐고 지적했다. 기획원과 법무부측은 교도소시설비중 일부를 「전용」했다고 주장했다.
임의원은 1백32억원공사의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추궁했다. 기획원측은 사색이 됐고 누군가의 입에서 『잘못하면 내목이 달아난다』는 소리가 나왔다. 당황한 기획원측은 예비비중에서 삭감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예비비 6백86억원중 지난8월 태풍피해로 인해 지출한 4백억원을 제외한 2백86억원중 67억원을 삭감하겠다는 것. 기획원측은 재해대책비가 4백19억원(설해 대책비 19억포함)이므로 67억원을 삭감하겠다고 설명했다.
정위원장은 이 67억원 삭감안을 가지고 이종찬 총무와 협의하러 갔다. 이총무는 67억원 삭감에는 문제가 있으므로 다시 조종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이사이에 소회의실에서는 기획원과 야당간의 직접 협상이 이뤄지고 있었다.
임 민한간사와 김 예산실장은 동향으로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
이들간에 어떤 묵계가 있었는지 임간사와 국민당의 이간사는 『여당은 자리를 좀 피해주시오』라고 했고 박민정간사는 영문을 모르는체 소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재조정지시를 받은 정위원장이 다시 회의실에 들어섰을 때 이미 기획원측이 19억도 양보해 86억원을 삭감키로 합의는 끝나고 있었다. 정위원장은 기가막혀 『어,어』했을뿐 이미 합의된 수정안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이총무와 몇몇 민정당의원들이 운영위원장실과 의원식당에서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예결위회의장과 연결된 마이크를 통해 수정안통과를 알리는 의사봉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총무와 의원들이 달려갔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일. 실색한 이들은 경위를 추궁해본 결과 민정당은 눈뜬채로 완전히 당했다는걸 알았다.
이총무를 비롯한 민정당 의원들은 노기가 충천했다.
사정을 안 신병현 부총리는 30일 상오 운영위원장실로 전화를 걸었으나 이총무는 출근전이었고 다시 전화를 했을때는 의원총회가 진행중이어서 연락은 이뤄지지 않았다.
의원총회에서 감을 잡은 봉우완.정남.박권흠의원들이 잇달아 등단해 기획원태도를 집중성토. 봉의원은 『기획원과 민한당간의 해프닝 진상을 설명하라』고 당지도부에 요구했고 정의원은 『정부.여당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박의원은 『복지예산을 증액하라는 요청에도 기획원측은 한마디로 안된다고 했다』며 『헹정관료들이 당에 너무 냉담하다』고 푸념.
하오1시반쯤 국히국무위원실에 일찍 나온 신부총리는 권정달 사무총장에게 전화로 면담을 요청했고 윤석정사무차장이 이총무를 설득해 함께 만났다. 이 자리에는 김용걸총무처장관.정종택정무장관.김종호국회내무위원장과 함께 김예산실장도 동석하고 있었는데 고함치는 소리가 나면서 김실장은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쫓기듯 문밖으로 나왔다.
신부총리는 이 자리에서 약1간에 걸쳐 이총무에게 『백배사죄』했다는 것. 기획원실무자의 문책문제는 자체처리에 맡기기로 했지만 민정당내에서는 행정부측의 당에 대한 태도와 관련해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강경의견도 있었다는것.
최근 구정 공휴 문제와 관련한 정부측 태도에서 일기 시작한 민정당측의 불쾌감은 이 문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예산처리에 있어 여당의 어깨너머로 야당과 직거래하는 방식은 『야당만 입다물면 문제가 없다』는 구태의연한 방식이라는 것. 문제가 있으면 민정당을 통해 해결해야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민정당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당정간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움직임이고 구정공휴문제도 이런 선위에서 신중히 재론할 태세다.<김영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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