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그림이 나를 위로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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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 알렉산더 로슬린의 ‘베일을 쓴 여인’의 일부

눈길을 끄는 그림을 오래 바라본다. 세상으로 향한 창 하나가 열린다. 마음의 그물을 던진다. 이미지가 걸린다. 느끼고, 즐기고, 씹어먹는다. 잘 소화된 이미지는 몸속으로 들어와 빛이 되고 떨림이 된다. 우리 안의 무언가를 툭 건드리는 그림의 힘으로, 추레한 삶은 다시 반짝이고 파닥인다고 말하는 미술인 두 사람이 있다.

사진평론가이자 미술저작 번역가인 정진국(50)씨는 인생을 숭고하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이미지로 사랑을 꼽는다. 그는 사랑을 "화가들이 받은 선물이었고 이미지는 바로 그들의 날개였다"고 묘사한다. 화가들이란 "간절한 구애의 감정이 사라지는 날 우리의 삶 또한 끝장이라는 듯이" 사랑을 신격화한 연모의 화신이었기에 빈곤과 비통함에도 아랑곳없이 사랑의 이미지를 갈구한다.

'사랑의 이미지'는 서양미술사에서 고른 사랑의 이미지를 인문학적 안목으로 탐험한 책이다. 바탕은 사랑이지만 시대정신과 역사까지 아우르며 이야기한다. 그의 눈과 귀를 따라나서는 사랑의 이미지 여행은 달콤하기보다는 쌉쌀하다. 장 푸케의 '천사들에 둘러싸인 동정녀'에서 거룩한 도발을 보고, 마네의 '화실의 점심'에서 어두운 사랑의 그림자를 읽는다. 사랑은'동경'과 '우아'와 '정념'을 거쳐 '무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정씨는 읊조린다. 화가는 '사랑의 이미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되레 '이미지에 대한 사랑'을 통해 구원받은 영원한 아웃사이더로 정씨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민음사가 뽑은 제2회 '올해의 논픽션상' 역사와 문화 부문 수상작이다.

미술평론가이자 대중미술서 저술가인 이주헌(44)씨는 그림을 위로의 한 방편으로 삼는 길을 보여준다. '그림 속…'이란 제목 그대로 작품 이미지에 자신을 던져넣게 구성했다.함께 걸어가는 대상을 여성으로 잡았기에 어머니와 아내에게 맞춤하다. '부부 싸움을 하고 나서 후회될 때''아이가 아플 때' '삶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처럼 일상에서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적절한 그림을 골랐다.

이를테면 '신혼의 날들이 그리울 때'는 영국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의 '화가의 허니문'속으로 들어간다. 뺨을 맞대고 손을 꼭 잡은 채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발그레한 볼의 신부를 보면 갓 결혼했을 때의 달콤함이 떠오른다. 친구처럼 이웃처럼 그림과 대화를 나누면 어려운 때를 그림처럼 아름답게 살아 넘길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이주헌씨가 명예관장으로 있는 온라인미술관 '햄스빌 아트갤러리(www.hamsville.co.kr/gallery)에 먼저 소개돼 주부 누리꾼에게 인기를 모았다. 이들의 글이 함께 실려 있는데 체험에서 나온 진솔함 덕에 때로 지은이 뺨치는 미술감상을 만날 수 있다.

정재숙 기자

사랑의 이미지
정진국 글·사진, 민음사, 304쪽, 2만원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이주헌 지음, 예담, 272쪽,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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