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가 강선영씨 인형수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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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얼굴이 예쁘지는 않지만 원색의 플레어 스커트를 입은 페루의 처녀, 아기를 등에 업은채 똬리를 머리에 얹고 있는 튀니지 아즘마. 눈마저 검은 천으로 가려버린 아랍에미리트 여인등 1백50여개의 인형들이 응접실을 지키고 있다.
무용가 강선영씨(56)는 매일 아침 산책길에서 돌아오면 곧바로 이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밤새 안녕하지 못해 넘어진 놈도 있고 추위에 떨면서 고향으로 돌려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아프리카 토인도 있다.
『인형은 그 나라를 축소한 것 같습니다. 특히 전통 의상을 공부하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요.』
강씨가 인형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60년5월 파리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했을믈때부터. 너무 예쁜 프랑스 인형에 매료되어 인형과 함께 살기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후 해외공연 때마다 여행지에서 가장 먼저 인형가게를 찾게 됐다.
20여년 모은 인형이 1백50여점으로 여행을 하지 못한 공산권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인형만 없고 세계 각국의 인형을 모두 모은 셈이다.
그만큼 강씨의 해외나들이도 많았던 것.
한번 해외공연을 나가면 3∼4개월씩 걸리는데다 잘못 다루면 인형이 망가지기 때문에 인형수집용 가방을 따로 마련해서 메고 다녀야했다. 『우리나라 인형은 너무 크게 만드는 것이 흠입니다. 여행자들이 손쉽게 사갈 수 있게 자그마하게 만들면서 우리것이 듬뿍 들어가는게 좋습니다.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 인형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인형 연구가는 아니지만 강씨가 세계의 인형을 대하면서 느낀 점이다.
외국에는 인형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인형학자도 있다고 한다.
인형의 재료도 다양하다. 대개 그 나라에서 생산하는 직물류로 만들지만 이집트 인형은 가죽제품이 많고 네팔 인형은 모두 철제. 세네갈과 에콰도르 인형은 목각품 일색이다.
우리나라 고전무용과 서구적인 무용을 합쳐 추상적인 작품을 만들때면 가끔 연기자들의 의상때문에 고민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인형들을 집합시켜 의상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는다고 한다.
강여사집 인형들은 가끔 TV방송국이나 백화점등에도 불려나가 일반에게 선을 보일 때도 있다. 강씨는 혹시 인형가족들이 외출에서 실종(?)될까봐 저마다 넘버링 꼬리표를 달아 주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우표나 동전수집 다음으로 인형수집이 여성들의 취미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강씨도 여러가지 수집을 해보았지만 가장 여성다운 취미가 인형수집인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인형의 제조기술, 복식제도, 직물의 디자인등에 관한 지식은 물론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연구도 수집에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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