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질환 70대 "간접흡연 무서워 기원 못 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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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棋院)에 놓인 담배와 재떨이. 기원은 건강증진법상 금연구역에 해당되지 않는다. [중앙포토]

기원(棋院)에서 바둑 두는 게 유일한 취미였던 전모(75·서울 송파)씨는 지난 3월 중풍으로 갑작스레 쓰러졌다. 거동이 불편해진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기원에 출입하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였다. 간접흡연 때문에 혈관이 축소되면 병세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거였다. 전씨가 낙담하자 의사는 컴퓨터 바둑을 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전씨는 “은퇴 후 기원은 내 유일한 사회생활이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내 금연구역이 전면적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기원은 당구장·스크린골프장·볼링장과 함께 간접흡연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1000명 이상이 이용하는 체육시설은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지만 소규모 체육시설에는 관련 규제가 없다. 식당은 2015년 1월이면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곳이 금연시설로 묶이지만 노래방·나이트클럽에 대한 제한 규정은 없다.

 건강증진법은 금연구역을 업종을 열거하는 방식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업계의 반발을 고려해 일부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조홍준(가정의학) 교수는 “혈관과 심장질환을 가진 어르신들에게 간접흡연은 치명적”이라며 “어르신들이 주 고객인 기원이 여전히 흡연구역이라는 점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금연구역 내 흡연실’도 건강의 숨은 적으로 지적된다.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울 순 없지만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담배를 피울 수 있도록 한 게 ‘흡연실’이다. 공항의 흡연 공간과 대형 카페의 흡연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흡연실이 간접흡연을 막을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서울대 이기영(환경보건학) 교수는 “실내 흡연실로부터 촉발되는 간접흡연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시속 100㎞의 강한 바람을 통해 계속 환기해줘야 한다”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기영 교수팀이 2010년 서울시내 커피전문점 29곳을 조사한 결과 흡연실은 담배 연기의 52%를 막는 데 그쳤다. 층으로 금연·흡연 구역을 분리한 경우는 58%를 막아냈다.

 서울의료원은 지난해 1월 일반음식점의 흡연실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서울시내 호프집 24곳을 조사한 결과 ▶술 마시며 흡연이 가능한 소규모 호프집은 미세먼지 농도가 116.3μg/㎥ ▶흡연실 없이 전면 금연을 실시한 호프집은 41.5μg/㎥ ▶별도의 흡연실을 둔 호프집은 74μg/㎥를 각각 기록했다.

 주로 지하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 교수팀이 지난해 10~11월 서울 용산구와 마포구의 나이트클럽 세 곳을 조사한 결과 평일의 흡연 클럽은 평균 438.9μg/㎥의 미세먼지 농도를 보였다. 이는 금연 클럽의 평균치인 16.1μg/㎥의 27.3배에 이른다. 서울시가 초미세먼지주의보를 내릴 때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85μg/㎥라는 점을 감안하면 흡연 나이트클럽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미국 암학회는 미세먼지 농도 10μg/㎥가 증가할 때마다 심혈관·호흡기 질환 사망률이 12%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흡연 나이트클럽에 가는 건 발암물질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노래방·나이트클럽 등 밀폐된 유흥업소의 금연구역 지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인식 팀장, 강기헌·구혜진 기자, 공현정(이화여대 정치외교·경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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