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반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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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심사에 거두어 넘겨진 작품들도 지금까지의 모든 백일장에서는 피밭에서 벼를 골라내듯 작품다운 작품을 골라내기가 그리 힘들었는데, 이번 백일장에서는 벼밭에서 피를 골라냈다고나할까. 초심에서 골라 쥔 작품이 버려진 작품보다 월등히 많았었다.
그리하여 심사위원들은 조그마한 탄성을 올렸고, 재심부터는 각자가 한작품 한작품마다 채점을 하기로 했다. 모두 2백49편중에서 예심에서 골라 쥔 작품이 20여편, 3심부터는 상·중·하방식의 채점을 거듭하여 8편의 임선작을 골라냈고, 그중 전원 A점인 3편 외 5편의 작품을 모두 가작으로 미루었다.
마지막 3편을 앞에놓고 호선한 결과, 『북악물들다』(박상훈)는/온 산 더듬어내린 땟갈 고운 하늘물/이라는등, 한바탕 어울리는 저 큰 산은 풍악일지/라는등 매수마다 내디딤은 좋았으나 무엇인가 정제 되지 못한 상이 마음에 걸렸었고 『한강』(송은숙)은 장장 4수까지 이끌어나간 저력은 인정되나 그리고/목숨은 그 값으로 제자리 지키는데/모가지 드리워도 댓잎같이 서술 푸른/같은 가귀가 있긴하나, 그러나/허리께쯤으로 중량을 살려내는 아량/이라는 중장에 와서는 시조가 시조로서의 리듬을 완전히 잃고 있다.
시조는 리듬의 시다. 내재울이 경색 되어서는 안된다.
『북악 물둘다』(홍승희)는 당사실이 실타래에서 풀어지듯이 잔조름한 시상들이 잘 풀어져 있다./사는 일 안개 젖어 고개들어도 안뵈더니/작은 일 큰 일에도 곧잘 흔들리어/잠자는 말씀들을 빛으로 불러내어/어느것하나 단풍잎처럼 단심으로 물들지 않은 귀절이 없다.
시어들이 모두 제자리를 얻어 편안하게 앉아있다. 겉으로 차고 속으로 뜨거운 언어들, 무리없는 전개, 살려낸 내재율, 이 가을의 장의 수확이다. 장원의 자리에 앉게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심사위원=이태극·정완영·장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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