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황혼이혼에 나선 맥씨 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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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산전수전, 우여곡절이 왜 없었겠나. 그래도 30년 넘게 잘 살았다. 미칠 듯 사랑해 맺은 인연은 아니었다. 양가의 정략이 작용해 얽힌 관계였다. 집안 사이에 구원(舊怨)이 있는 데다 신부 쪽 살림이 좀 기울어 구박 받고 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은 있었지만 큰 탈은 없었다.

무난한 가정사의 동력은 가세의 번창이었다. 자식들이 공부 잘하고, 장사 잘하더니 마을 절반 가까이를 집안 땅으로 만들었다. 그중에는 완력으로 빼앗은 것도 꽤 됐다. “그 집 땅 안 밟고는 마을을 지날 수 없다”는 얘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처가 식구들도 톡톡히 덕을 봤다. 양가 모두 떵떵거리며 살았다. 서로 ‘뺀질이’ ‘촌놈’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웃어넘길 만했다.

 집안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 건 5, 6년 전이다. 벌어놓은 땅들을 이래저래 다시 잃고 나니 모두 날카로워졌다. 그래도 ‘왕년의 추억’을 얘기하면서 버텼다. 수상한 기운이 불어닥친 것은 4년 전쯤이다. 맥씨 부인이 유산으로 물려받은 볼품없는 땅에서 온천이 터졌다. 남편은 쾌재를 부르며 개발사업에 나섰다. 눈치 빠른 시댁 식구들이 달려들었다. 맥씨 집안에선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볼멘소리도 나왔지만 분배된 수익이 제법 쏠쏠해 그럭저럭 넘어갔다.

 그러던 중 최근 온 마을에 불경기가 불어닥쳤다.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가장은 생활비 절감을 선언했다. 맥씨 부인은 폭발했다. “내 여태껏 시댁 식구만 챙기는 거 보면서도 참고 또 참고 살았더니, 늘그막에 생고생을 시키나. 갈라서자. 온천은 원래 우리 집 것이니 고스란히 내놔라.”

처음에는 엄포로만 여겼던 남편은 부인이 도장에 인주까지 묻혀 흔들자 처량맞은 홀아비 신세가 될 걱정에 ‘살아온 정’을 운운하고 있다. 맥씨 부인과 처가 식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분주히 재산분할청구서를 작성 중이다.

 영국이 딱 이 짝이다. 윗글의 숫자들에 0을 하나씩 보태고, 온천을 북해 유전으로 바꾸면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의 307년 역사와 흡사하다(‘아들’이란 뜻의 접두사 ‘맥(Mac)’이 붙은 맥도날드·맥아더·맥그리거 등은 스코틀랜드의 성(姓)이다). 애당초 북해에서 유전이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피해 의식 있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잉글랜드의 배려가 좀 더 있었다면 둘은 아웅다웅하면서도 해로의 황혼 녘을 함께 바라봤을 공산이 크다. 두 집안이 남남이 되느냐는 이제 하루 뒤면 알 수 있다.

이상언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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