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공업국, 전후 처음 식량배급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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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구에서 가장 공업화된 루마니아가 최근 식량부족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루마니아 정부는 지난 12일 일부 식료품의 사재기를 금지시킨데 이어 17일에는 빵과 밀가루 등의 배급제실시를 발표했다. 루마니아로서는 전후 처음이며 동구에서는 폴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실시되는 배급제다. 식량부족에 대한 불만은 이미 지난해 여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유국이기도 한 루마니아는 기후조건도 좋아 식량자급이 가능한 농업국이었다. 프랑스의 한 통계연감에는 천연가스 매장량이 1천6백30억입방m로 세계 6위, 밀 생산은 세계 11위로 기록돼있다.
이를 배경으로 「차우셰스쿠」서기장(대통령)이 이끄는 공산당 정권은 강력한 공업화정책을 추진, 70년대의 제5, 6차 5개년 계획을 통해 11∼13%라는 높은 공업성장률을 나타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성장의 원천인 유전이 점차 고갈되면서 재작년 여름에는 소련으로부터 소량의 석유를 수입까지 하는 형편이 됐다.
이에 따라 공산품 수출이 줄었다. 대외부채는 81년 현재 1백30억 달러에 이르렀다.
루마니아 공산당은 정책 재조정을 시도했다.
79년 11월 공산당 대회에서는 81년부터 시작되는 제7차 5개년 계획의 공업성장률을 10% 이내로 억제하는 대신 다시 농업에 힘을 쏟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악천후가 전 동구를 덮쳤다. 소홀했던 농업정책과 악천후로 식량사정은 급격히 악화됐다.
작년 가을부터 지방도시에서는 물자부족현상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쇠고기는 물론 밀크·버터·식용유·설탕 등이 점차 상점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부는 주민들의 사재기 때문이라고 보고 우선 지방도시에 한해 배급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에 자극 받은 사재기 파동이 루마니아 제 2의 도시 클루지, 심지어는 수도인 부쿠래슈티에까지 파급돼 사태가 심각해졌다.
이에 정부는 지난 12일 설탕 등 일부식료품의 사재기를 금지시켰다. 위반자는 6개월 내지 5년형에 처하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17일에는 82년 말까지 빵과 밀가루·옥수수 등의 배급제를 실시한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엄격한 보도통제 하에서 소문으로나마 폴란드 자유노조의 움직임을 듣게된 루마니아 국민들은 최근에 이르러 점차 동요의 빛을 보이고있다.
작년 여름 루마니아 최대의 탄광지대에서 파업이 일기 시작한 것을 비롯, 버스탈취·폭발사건·국외탈출 등이 연발하고 있다.
8월에는 서방세계에의 망명을 요구하는 3명의 남자가 버스를 탈취,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20여명의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국외탈출도 작년 말 이후 동구에서는 폴란드 다음으로 많아졌다.
그러나 작년 폴란드 노동자소요가 식량부족에서 기인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는 「차우셰스쿠」정권은 루마니아에 「제2의 폴란드」사태가 싹틀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재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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