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각계가 「한국」을 보는 눈 - 유균 기자 방 일기|「안보경협」엔 아직도 "난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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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양국 외무부 출입기자들의 교환방문계획에 따라 지난 5일부터 열흘간 일본을 방문해「소노다」(원전) 외상, 「후꾸다」(납전) 전 수상을 비롯한 일본 각계지도층과 만나 한일관계에 관해 광범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우리가 만난 일본지도자들은 한결같이 88올림픽 유치를 축하하고 양국간의 새로운 관계가 좋은 출발을 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에 와있는 한국특파원과 가족들이 귀국할 때는 일본을 미워하면서 떠난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때린 사람은 잊기 쉬워도 맞은 사람은 잊기 어렵다는 한국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
지난8월 도오꾜 외상회담을 통해 한국인에게는 스스로의 표현처럼「극악무도한 사람」으로 비쳐졌던「소노다」외상의 대한자세도 사뭇 진지하고 정중했다.
「후꾸다」, 「나까소네」(중맹근) 등 이른바 지한 파로 불리어지는 인사들의 대한자세는 한층 전진적이다.
『양국관계는 끊으려해도 끊지 못할 사이다. 먼데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세계정세를 비추어볼 때 양국은 대단히 가까운 관계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솔직하게 터놓고 대화해야 한다는 점이다』라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었다.
좋은 출발을 바라는 일본측의 자세는, 그러나 「그 좋은 출발」을 보장하는 경협 등 몇 가지 전체에서 한국 측과는 현격한 입장의 차이를 보인다.
「소노다」외상은 표현은 완곡하지만 『돈 문제는 개인사이나 국가간이나 기본적으로 같은 성격』이라고 「빌리는 쪽의 자세문제」를 은근히 지적하면서 『기본적으로 재정 형편이 어려운 일본입장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소노다」외상은 그러면서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60억 달러의 경협 요청이 전문가의 면밀한 검토에서 나온 것인 만큼 일본정부로서는 정부·민간수출입은행 등 여러 차원에서 협의해나가면 해결해나가는 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 공공차관이 전부가 아닌 민간베이스의 상업차관을 가미한, 물 탄 술을 받아달라는 속셈을 비친 셈이다.
경협의 명분론에 대해 일본측은 이구동성으로 안보경협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의 경협 요청이 결코 탱크나 전투기를 달라는 것이 아니고 경제건설을 위해 써야할 돈을 안보에 투입하는 만큼 일본이 받는 상대적 수혜에 상응한 경제협력을 하라는 것임을 일본지도자들은 애써 외면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 같은 안보경협 반대 분위기를 대변이라도 하듯, 요미우리(독매)신문의「와따나베」(도변) 논설주간은 『안보와 관련한 경제협력은 설혹 일본정부가 하려해도 언론이 적극적으로 반대하겠다』고 했다.
톤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같은 안보경협에 대한 일본측의「동일한 목소리」는 미리 입을 맞추지는 않았더라도 일본이 추구하는 국가목표 내지는 국익 앞에서 무언의 행동일치를 보이는 일본의 정치질서와 국민성을 잘 나타내 주었다.
일 외무성의 한 관리는『방위력을 증대해야한다는 서방자유진영의 요청을 일본이 당장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2차 전의 쓴 경험 때문』이라고 일 국민의 안보알레르기를 절명했다.
「아마우」(천우) 일 외무성정보문화국장이 주최한 만찬에서 합석한 한 외무성 출입기자는 『일본은 원래 외침을 당한 적이 없어 안보의식이 없는 나라』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난번 방한을 통해 『경주를 보고 고향에 온 기분을 느꼈으나 바로 하루 뒤에 판문점과 땅굴을 돌아보고 나서 강한 쇼크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은 한국의 실상을 너무 모르고 있으며 지식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국민들은 한국을 자기네 자로만 재려는 사고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일본 외무성의 관리도양국 국민간의 감정의 공유기반이 없는 현실을 걱정하면서 새로운 세대간의 대화를 제기했다.
일 외무성의 「아마우」정보문화국장과 「하야시」일 국제교류기금 이사장은『양국 국민간의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문화교류가 확대돼야한다』면서 청소년 교류 및 미술전시회 등 인적교류와 문화적모임의 점진적인 확대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일본의 이 같은 자세는 결국 일어를 구사하지 않는 새 세대가 한국을 이끌어나가는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의식, 새로운 차원에서의 대화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60억 달러의 경제협력문제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대화, 발전적인 관계증진에 한발 앞서 가로놓여있는 극복해야 될 과정으로 인식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일본은 아직도 한국의 자세에 어딘가 양보의 기색이 보일 것이라는 기대로 시간을 벌려는 눈치였다.
그러나 한국의 고위외교소식통은 『경협 문제가 결국 양국이 다같이 만족할만한 선에서 타결될 전망』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아무튼 60억 달러의 경협 문제 자체는 결코 한일관계의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짧은 일본견학을 통해 얻은 결론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양국국민들이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 보다 더 깊은 이해기반을 마련해나가는 작업의 계속이 아닌가 느껴진다.
이 같은 이해기반의 확대를 위해선 한국에서도 일본을 막연한 반감으로 대하는 차원에서 그들의 어떤 점이 뛰어났길래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를 연구하고 배우는, 다시 말해 일본을 아는 자세로 바뀌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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