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민주시민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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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경찰의 임의동행 수사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님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경찰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용의자도 이미 만성이 돼 당연한 것으로 문제삼아오지 않았을 뿐이다.
경찰은 치안목적이나 범죄수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밀어붙이고, 당하는 사람은 그저 재수소관으로 돌려 체념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시민의식이었다. 병든 시민의식이라고 표현한다면 필자의 지나친 결벽증일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나 일반시민들이 크게 반성해 볼 일이 한둘이 아니다.
첫째로 검찰은 수사에 공을 세우려는데 조급하여 닥치는 대로 용의자를 잡아들이려는 습성을 버려야한다. 수사는 용의자룰 붙잡는 것이 앞서야할 것이 아니라 물증·기타 움직일 수 없는 확증을 확보하는 것을 선행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육감만으로 사람부터 붙들어다놓고 그 사람의 입에서 육감에 들어 맞는 자백만을 받아 내려는데 초조함에서 「임의동행」이라는 편리한 용어를 빈사실장의 구속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보니 진범은 꼭 숨어버리고 사건의 진상은 미궁에 빠져버리고 만다. 미해결의 많은 강력사건들도 경찰의 이 같은 수사의 허점 속에 가려지고 만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둘째로 J군이 이번 사건의 진범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번 경찰의 처사는 헌법이 보장하고있는 법관의 영상주의나 무직의 추정이라는 헌법법조를 경찰스스로 짓밟았다는 것이다. 인권에 관한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의 모든 조문이 하나의 가식물이 아니고 시민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한 헌장임에도 「수사상 필요」라는 그럴듯한 구실로서 아예 짓밟아 버리고서도 아무런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 경찰들에게 「사법경찰관」이라는 직명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거의 확실성있는 용의자에게 끝까지 임의수사방법으로 추적하여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을 쥐고서야 구속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내미는 끈질긴 인내와 준법의식이 우리의 경찰관 한사람 한사람에게 심어질 때 우리나라도 진정한 입헌법치의 꽃이 필수 있다고 믿는다.
세째로 죄인이면 모두 구속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으로 알고있는 경찰의 태도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법은 불구속을 대원칙으로 명시하고 다만 만부득이할 때 법관의 재량과 판단에 의해 비로소 구속할 수 있게 되어있건만 경찰은 자기네들에게 부여된 직권으로 착각하여 마음대로 사실상 구속해서 할 것 못할 것 다해놓고 마지막으로 기록상 요식행위를 갖추기 위하여 검찰을 통해 법관의 영장을 받고있는 타성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번 J군사건에서 모처럼 검찰이 경찰의 그와 같은 타성에 제동을 걸었다는데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검찰의 영단에 격려를 보내야 할 것 같다.
끝으로 검찰의 경찰에 대한 지휘권이 보다 실질적으로 작용했다면 16일간이라는 긴시간의 불법상태가 좀더 빨리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앞선다. 일반시민들은 검사나 판사는 경찰의 한일에 그저 끌려만 다니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인사가 없지 않은데 이제 검찰은 명실공히 수사 중추기관으로서의 명예를 회복할 때가 왔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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