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시간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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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랜트」미국대롱령은 기어이 조선원정명령을 내렸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총사령관으로 용맹을 떨쳤던 명장「그랜트」대통령은 4년전 재녀럴 셔먼호 사건을 잊지않고 있었다.
1866년 대동강연안에 닻을내렸던 미국상선 셔먼호는 우리조선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불태워졌던 일이 있었다.
「그랜트」대통령의 훈령을 받은 북평주재「로」공사는 1년여만인 1871년5월 일본 나가사끼(장기)에서 미해군 아시아함대 사령관「로저즈」제독과 함께D데이 작전을 개시했다.
기남 콜로라드 호를 선두로전남2척, 순양함2척, 모두 5척의 조선원정 함대가 편성되었다. 수병·해병 1천2백30명의병력과 대포 85문. 드디어 5월16일 이 함대는 전략상 요충인강화만으로 향했다.
항해는 꼬박 1주일이 걸렸다. 전함이라고는 하지만 낡은 목선들. 강화만에 닻을 던진 미함대는 중국인통역을 시켜 강화류수에게 조정으로 보내는「로」공사의 편지를 전했다. 조선은 문호를 개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편지를 받아간 당하관급의 우리연락관은 끝내 나타나지 앉았다.
무소식이 희소식-. 미국함대는 이렇게 짐작하고 광성진쪽으로 거술러 올라갔다. 그때가 6월2일. 미국함대가 기다리던 회신은 이때 뜻밖에도 포탄으로 날아왔다. 광성진의 대포 2백문은 일제히 불을 뿜은것이다.
훗날 한 함장이던「블레이」중령의 회상이 재미있다. 남북전쟁때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이렇게 좁은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포화가 쏟아진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미군부상2명, 조선군 전사1명의 전과.
이 서전끝에 강화류수의 응답이 있었다.
『만리풍파 시달려 시장할터이니약소하나마 거세한 황소 3마리와닭 50수, 계란 1만개를 보내노라.』협상은 결렬. 6윌10일 하오1시「블레이」중령의 함대는 초지진에 함포사격을 가하고, 드디어 상륙을 감행했다.
미국력사상 싸워서 빼앗은 최초의 아시아 땅이었다.
그 이튿날 덕진진을 거쳐 광성보로-. 해발45m의 언덕에 자리한 토성에선 1백47개의 포대가 포탄을 쏟아냈지만 함대의어디에도 맞지않았다. 이때의 장렬한 전투장면은 바로 미국참전자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아있다. 우리조선군은어느누구도항복하는이가없었다. 혹은자결하고혹은 바다에 투신하고, 어떤 사람은 불속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불태웠다.
그무렵 뉴욕 헤럴드지의 보도가인상적이다.
『「로저즈」제독은 전투에 이겼지만「로」공사는 외교에 졌다』어제 중앙일보에 소개된 한 참전장교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는그때 48시간 전투의 생생한 르포르타지같아 백여년전의 일들이삽화처림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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