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예술의 산실을 공개|재미 백남준씨 「계간미술」과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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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세계적인 전위음악가이자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재미 백남준씨(49)는 근간『계간미술』지 10호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의 수수께끼 같은 사생활을 털어놓으면서 밀실의 스튜디오를 공개하고 또5년 뒤쯤 고국을 방문하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술사가「캐프로」에 의해『문화적 테러리즘』 이라는 찬사의 별명이 붙여질 만큼 이색적인 연주회로 물의를 빚기도 한 백씨는 지난해 동경에서까지 작품 발표 전을 가지면서도 지척의 고국에 들르지 않아 그가 한국을 외면하지 않나 하는 의구와 비난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김재혁 뉴욕특파원과의 인터뷰에서는 『사주점을 쳐보니까 55세가 되어 한국에 돌아가야만 대길하다는 점괘가 나왔기 때문』 이라는 뜻밖의 해명을 했다. 주역에도 일가견을 가진 그는 그런 믿음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부하고 있다』 고 강조했다.
58년 이후 그는 음악에다 시각적인 액션을 부여하는 점에 착안하고, 나아가 음악과 섹스와의 조화까지 시도함으로써 행위예술의 선구적 총아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을 누비는 최대의 명성은 63년 이후이며, TV수상기를 미술에 도입한 비디오 예술에 의해서다. 이 기발한 착상은 구미의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서 공감을 얻어 70년대에 급격히 보급되었다.
64년 뉴욕으로 이주한 백씨는 첼로 연주자 「샬로투구어맨」 양과 의기가 투합해 토플리스 차림으로 연주행각을 벌임으로써 엉뚱하고 괴벽스런 전위예술가로서의 명성을 굳혔는데 한때 외설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의 20여 년에 걸친 예술행각은 지금 뉴욕의 전위미술 중심지의 소호에서 비디오예술가로 정착해 있다. 그는 같은 비디오 예술가인 일본인 「구보따」 (구보전성자)여사와 함께 살고있는데, 문화재단의 약간의 지원금과 인세 (비디오필름 4분 짜리의 관람에 50달러, 구입에 1백75달러)및 서독 뒤셸드르프 대학에 전자음악교수로 출강하는 것이 그의 수입원의 전부다.
그가 비로소 공개한 스튜디오 겸 침실은 낡은 5층 건물의 지붕 밑 창고 같은 방이며 여기가 저 유명하고 소란스런 예술의 산실이라기에는 놀랍고 어이없었다고 김 특파원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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