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동안 뭘 했나|11대 국회위원들의 활동을 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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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제5공화국 헌법과 국회법이 국회의원의 겸직 제한을 대폭 완화함에 따라 의사당과 생업장을 동시에 드나드는 겸직의원이 1백명에 가깝다.
지난 4월11일의 겸직신고 법정시한까지 국회사무처에 겸직을 신고한 의원은 l백명(5명의 사퇴자 포함)이었으나 그동안 7명이 늘어 총신고자는 1백7명이고 이중 9명이 사퇴 또는 휴직하여 현재 겸직의원은 98명이다.
그러나 이세기·김종인·김현욱·최상업·박원탁·배성동·최창규의원 등과 같이 교수직을 휴직중인 의원 등을 감안하면 사실상 겸직을 하고있는 의원은 80여명. 이들 중에는 보수를 받지 않는 단순한 명예 겸직자도 있어 실질적으로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는 겸직의원은 7O여명정도로 알려졌었다.
겸직의원의 보수는 최고 2백10만원(나웅배의윈·민정·한국타이어대표)에서 최하30만원(진의종의원·민정·삼화화성고문)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지만 대개 50만원이상을 받고 있고 1백만원이 넘는 의원도 20여명이다.
외제차나 푸조 등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의원은 대부분 겸직의원. 이들은 의원끼리 같이 점심을 먹으면 으례 자기들이 점심값을 내는 것으로 알고있다.
겸직의원인 경남의 L의원이 지구당에 너무 돈을 쓴다고 해서 말성이 난것도 겸직으로 인해 자금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겸직의원들은 「의정」과 「직장」을 오가느라고 시간적으로는 바쁜 편이다.
민정당정책위부의장과 한국타이어사장을 겸직하고 있는 나웅배의원의 경우 회사·당사·의원회관을 바쁘게 돌다보면 어떻게 하루가 가는 줄 모를 정도라는 것. 지역구 출신 겸직의원의 경우는 이보다 더하다.
예컨대 김찬우 의원(민한)은 자신이 경영하던 병원에 월3백만원을 주고 의사를 고용했다.
김의원은 선거 때 당선되더라도 병원은 계속하겠다고 공약하여 이를 지키느라고 의사를 고용한 대신 자신은 의원생활에 주력하고 있다고 겸직의 어려움을 토로.
황산성의원(민한)도보다 충실한 의원생활을 위해 변호사사무실을 폐쇄한 채 의원회관과 당사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손태곤·이형배의원(이상 민한)은 사업체 일을 아들과 동생에게 넘겨주고 정치에 전념.
이같이 의원생활에 보다 충실키 위해 겸직일선에서 후퇴하는 의원도 있지만 양쪽생활에 똑같이 비중을 두는 의원들도 많다. 심지어 서울출신의 S의원(민한)과 같이 「생업」에 더 치중하는 의원도 없지 않다.
공인회계사를 겸직하고 있는 박완규의원(민한)은 전문지식을 재무위에서 1백%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나 의원품위를 지키기 위해 일을 가려서 맡아야 하고 활동도 제약을 받게돼 수입면에서는 의원되기 전의 3분의1도 채 안되는 실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처럼 실태는 각양각색이지만 의원겸직 허용이란 새 제도의 공과를 평가하기는 아직도 이른 것 같다. 지난 반년간의 경험만으로는 겸직으로 인한 이렇다할 부작용이나 공헌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장기폐회의 하한기를 상당수 의원이 여가선용할 수 있었다거나 민정당의 경우 재력있는 겸직의원 덕분에 특별당비를 손쉽게 거둘 수 있었다는 점 정도나 지적할 수 있다.
의원겸직에 대한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모든 다른 직을 겸할 수 있게 하고 예외적으로 겸직을 금지하는 규정을 두되 공무원·국영기업체 임직원 등 공적성격이 강한 직을 겸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구권 대부분과 영·독·인·태·멕시코·스위스·스웨덴·북구 3국 등은 국영기업체 및 정부투자기관의 임직원까지 겸임이 가능하고 대학교수 및 초·중·고교의 교원겸직도 대부분의 국가에서 허용하고 있다.
다만 그리스는 우리와 같이 대학교수에 한해서는 의원 재임 중 휴직토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의원겸직제도를 둘러싼 찬반논쟁은 11대 국회개원 초부터 본격화되어 아직도 뚜렷한 결론이 나온 상태는 아니다.
대체로 여당측은 대부분 찬성하는 쪽이고 야당에서도 겸직의원은 물론, 한영수민한당정책심의회의장 같은 비겸직의원 일부도 이에 동조하고 있어 대세는 역시 겸직방향으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다.
특히 최근 민정당은 비겸직상태에 있는 소속의원 및 타당의원에 대해서까지 겸직알선을 해줄 계획으로 있어 겸직의원 수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새 국회법의 겸직확대 취지는 『겸직을 제한한 구제도로 인해 직업정치인들이 등장해 전문지식의 결여, 정쟁의 반복, 비능률 등의 폐단을 낳아 결국 국정혼란, 국민의 정치 불신 등을 초래하고 전문직업인의 국정참여가 시대적 요청이 됐기 때문』이라고 국회사무처가 펴낸 국회법해설은 요약하고있다.
정치를 직업으로 삼아 생계를 정치에서만 해결하는 정치풍토가 계속되는한 정치는 과열화·극단화를 피할 수 없고 결국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구정치체제로 환원된다는 것이 개혁주체들의 생각이다.
가령 여권이라 하더라도 정치가 생업의 전부일 경우 정치권외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제5공화국의 가장 큰 목표의 하나인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는 논리전개가 있다.
그러나 겸직이 의원들의 관심과 노력을 분산시키고 따라서 정치인을 아마추어화하여 결과적으로 「정치」를 희석시키게되어 국민의 정치적 의사결정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반론 역시 아직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다수겸직의원의 존재가 정치발전에 역작용을 하는가 않는가, 겸직확대의 새 제도아래 국회가 더 활성화되는가 앉는가의 실적에 마라 평가될 수 있을 뿐이다.

<고흥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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