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돈 대신 담배 내면 깎아드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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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런던의 한 한인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에 이런 안내가 있다. “성수기 도미토리룸 1박에 말버러 담배 1보루+10파운드.” 6인실 도미토리 숙박 가격이 30파운드니 담배 1보루에 20파운드를 쳐주는 셈이다. 또 다른 게스트하우스는 이렇게 광고한다. “담배 1보루는 현금 15파운드와 동일하며 담배와 함께 숙박비를 결제하시면 할인혜택도 드립니다.” 그러면서 담배로 숙박비를 내면 1박당 2파운드씩 깎아준다.

 이런 블랙코미디가 가능한 건 물론 영국과 한국의 담배 가격차가 현저한 까닭이다. 영국에선 현재 말버러 1보루가 85.5파운드에 팔린다. 요즘 환율로 14만3000원이 넘는다. 그런데 우리나라 출국장 면세점에선 2만원이면 살 수 있다. 나라도 무역상이 되고 싶을 만한 군침 도는 가격차다.

 하지만 결국 승자는 게스트하우스 주인밖에 없다. 20파운드면 3만3000여원이다. 1인당 한 보루밖에 가져갈 수 없으니 1만3000원을 아끼는 게 고작이다. 품위유지는 물론 운반비도 건졌다 하기에 민망한 액수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다르다. 숙박비를 제하고도 1보루당 10만원 넘게 떨어진다. 골초라면 금상첨화다. 3갑도 안 되는 가격으로 10갑을 산 셈이니 이런 횡재가 없다. 안 피워도 문제가 없다. 런던 벼룩시장에 가면 1보루에 35파운드에 사주는 암거래상이 있다. 보루당 2만5000원 이상 번다는 얘기다. 돈 좀 아끼겠다고 트렁크에 담배를 우겨 넣는 투숙객이 늘수록 주인의 이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깐깐한 영국 세관에 소문이 안 났을 리 없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겐 유독 눈을 부라린다. 법정한도를 넘겨 가져왔다가 압수되거나 세금 물기 일쑤라는 거다. 개인 망신은 기본이고 국가 망신까지 덤으로 따라 붙는다.

 내년부터 담뱃값이 오른다니 히스로 공항에서 봉변당하는 한국인들은 줄어들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올려야 할 터다. 남의 횡재에 배가 아파서가 아니라 찔끔찔끔 올려서는 금연 유도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들이 불법으로 돈 버는 일도 사라져야 하겠지만 이 나라 백성들만 싼값으로 제 몸 버리고 남의 몸 해칠 이유가 없는 까닭이다. 서민 운운은 집어치우시라. 몸 하나가 전 재산인 서민일수록 담배로부터 건강을 지켜야 하는 게 진리 아닌가. 공연히 물가만 올리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주머니가 가벼운 청소년들의 접근의지를 꺾기 위해서라도 정답은 확실한 인상뿐이다.

이훈범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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