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총재의 폭넒은 제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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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토가 분단된지 올해로 36년. 오늘 남북의 이념·제도의 차이는 우리가 언제 다시 한나라를 이룩할 수 있을지 암담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그렇다고 통일에 대한 희망과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남북의「민족적 동질성」이 언젠가는 우리의 소망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다방면에 걸친 남북대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남북적회담제의 10주년을 맞은 12일에도『언제 어디서나 만나 이산가족 재회문제를 논의하자』는 김용식 한적총재의 제의가 있었다.
김총재는 이 제의에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외국과도 문호를 개방하는 국제환경속에서 유독 남북한사이에는 부모·자식이 안부편지 한장 주고받지 못하는 현실이『가슴아프다』고 지적했다.
사실 명절때만 되면 서로 가족과 친척을 방문하는 동서독의 긴 자동차행렬을 보면 비록 땅은 갈라졌어도 독일민족은 하나라는 그들의 긍지를 엿볼수 있으며 우리 민족이라고 그렇게 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국 분단의 나날이 길어질수록 민족적 동질성의 유지는 어려워질 것이며 그럴수록 남북은 방식이나 절차에 구애받지 않고 서로 대좌해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남북적십자대표는 지난 72년 6월,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과 친척들의 주소와 생사를 알아내서 상호방문과 상봉, 서신왕래, 그리고 재결합을 추진하기로 합의한바 있었다.
이것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혈육의 재회라는 인륜적 요구였다는 점에서 절실하고도 수월한 문제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는 북한측이 의제토의에 앞서 한국내의 법률적 사회적 환경개선이 앞서야 된다는 주장을 들고나와 실행되지 못하고 회담마저 중단된 채 오늘에 이른 것이다.
북적측은 인도적·동포애적 차원의 적십자회담을 그들의 정치선전무대로 이용하며 적십자사의 권한과 능력밖의 일을 고집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회담을 통해 우리의 체제나 이념을 북쪽에 강요하거나 반대로 북쪽의 그것을 받아들일 의사는 추호도 없다는 전제와 원칙을 천명한바 있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의 통로를 개설하면서 남쪽체제의 동요를 기대했다가 여의치 않으니까 오히려 북쪽폐쇄사회의 혼란을 우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순수한 인도주의적 이산가족문제도 공산혁명의 한 방편으로 삼으려던 북한측의 저의가 벽에 부닥친 것이다.
이 벽을 깨뜨리려면 북한측이 남북적십자회담 본래의 목표로 회귀하는 길밖에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는 문제는 남북간의 상호이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북한측도 재일동포를 받아들이고 일본인처까지 이주시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남북의 안부편지 교환을 그리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또 걸핏하면 민족분열의 책임이 남쪽에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민족의 동질성을 찾자는 우리 제의에 외면할 명분도 없는 것이다.
한적측은 이번 제의에서 회담이 중단된 과거의 경과는 새삼스럽게 시비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북적측은 새로운 각오로 대좌에 나올것을 간곡히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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