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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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납량화제로 돌려버리기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한은부산지점의 거액인출사건은 권력층사칭 사기극의 백미편(?)에 속한다.
권력층 또는 고위층을 사칭한 사기극은 자유당말기의 『귀하신몸』이래로 더욱 지능화하고 대담해지고 있지만 목소리를 흉내내고 극비문서까지 위조한 지경에 이르러서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을 대면 통할만한 사람을 사칭하고 사기행위를 벌인 사건은 제대로 파악이 안돼 그렇지 부지기수일 것이다.
우선 생각나는것만 해도 율산그룹이 망하기직전 범인들이 S사장을 불러내 납치극을 벌였을 때도 권력층을 사칭했고 최근 모 은행에도 권력층을 사칭한 융자압력사건이 생겨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이런 유형보다는 스케일이 작지만 세무서원을 사칭한 사기꾼들이 부쩍 늘었다.
며칠전엔 업소를 찾아다니며 버젓이 금품을 뜯던 가짜 세무원이 긴급 출동한 진짜 세무원에게 걸려 격투끝에 붙잡히기까지 했다.
국세청은 도처에서 출몰하는 가짜 세무원을 잡으려고 거듭 단속령을 내렸는데도 근절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기자를 사칭하고 세무서를 찾아다니며 공갈행위를 하는 자가 있다는 정보가 관계기관에 날아들고 있다는 얘기다.
사칭한 대상이 바로 필자이어서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제보를 한 사람은 중앙일보와 정부기관에 각각 전화를 걸어 알려왔다.
제보자가 신분을 정확히 밝히지 않아 진상은 알 길이 없다.
신문기자를 사칭하고 파렴치행위를 한 자들은 예전엔 무척 많았다.
그래서 신문에 이름깨나 나오는 기자치고 가짜 기자에게 피해보지 않은 사람이 흔치 않을 정도였다.
가짜 기자는『새시대』이후 많이 근절되어 별다른 잡음이 없었는데 요즘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일선 세무서에….
취재하다보면 어디에나 가는 것이 기자지만 적어도 세무관계 취재로 일선 세무서에까지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국세청 본부에서 모든 취재가 가능하니까. 피해자로서 불쾌함을 금할수 없다.
한편 생각하면 아직도『가짜』가 발을 붙일수 있는 풍토, 문제는 거기서부터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모두가 정정당당하면 어떻게 감히『가짜』가 행세할수 있겠는가. <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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