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폴란드영화 『마닐라…』 『마취제…』|극찬 속에 런던에서 상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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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최근 런던에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만들어진 두개의 외국영화가 비평가의 극찬을 받으면서 상영되었다.
하나는 필리핀의 「리노·브로카」가 감독한 『마닐라-어둠의 갈퀴 속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폴란드의 「와즈다」가 감독한 『마취제도 없이』다.
이 두 영화는 다같이 정치적 이유로 해서 그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주제를 교묘하게 검열관의 눈을 벗어날 수 있게 아슬아슬하게 다룬 점이 그 작품이 갖는 예술성과 함께 높이 평가되고 있다. 『마닐라-』는 춘향전유의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 전개된다. 시골처녀·총각이 사랑을 하다가 처녀가 도시에서 온 뚜장이에게 속아 마닐라로 취직(?)해서 떠난다. 처녀를 찾아 따라 나선 총각은 연인이 돈 많은·중국상인의 첩으로 팔려간 것을 발견하고 격분해서 그 중국인을 살해한다는 줄거리다.
그러나 감독은 이 비정치적 로맨스 속에서 백열의 사회 고발을 폭발시킨다. 연인을 찾아 나선 총각이 낯선 마닐라의 거리에서 체험하는 공사판의 노동착취, 빈민촌의 처참한 생활상, 「무작정 상경」이 사창가의 인육시장으로 유도되는 비극적인 상황들이 평범한 사람 이야기의 형식을 빈이 영화를 분노의 화산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마취제도…』는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체제에 순응함으로써 크게 성장한 정치부 기자가 그 체제의 미움을 사서 몰락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관객은 그를 파멸시키는 것이 그의 직업적 능력과는 관계없이 그를 지탱해온 정치 체제라는 것을 알게된다.
이 영화는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이 시작되기 전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솔리다리노스크 운동을 자극한 한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제목은 마취제 없이 현실의 고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도전적인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주역들이 모두 파멸하는 모습으로 끝나고 있다. 그러나 줄거리에서 주위의 압력 앞에 굴하지 않는 주인공의 강철같은 의지력을 보여 줌으로써 개인적인 파멸이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 예컨대 「바웬사」의 등장 같은 것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보고 난 뒷맛은 비극과는 거리가 멀다. <런던=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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