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국제 금융의 「태풍의 눈」오일 달러|작년 한해 산유국에 천백60억불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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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내에서 들고 있는 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돈이 큰덩어리째로 오가고 있다.
이 돈의 흐름에 따라 국제 금융의 협상이 바뀌고 세계 경제가 영향을 받는다.
이른바 피트로머니 또는 오일달러.
지난 73년말 석유값을 일거에 4배 올리면서부터 국제금융의 주역으로 등장한 오일달러는 세계의 부를 산유국으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 한햇 동안 무려 1천l백60억달러에 달하는 거액이 원유대금조로 중동산유국(OPEC)으로 빨려 들어갔다.
1천1백60억달러는 산유국들이 기계·식량 등의 수입에 지출하고 남은 돈, 즉 경상수지흑자분을 말한다.
올해는 8백억달러 내외가 산유국으로 집중될 전망이다.
그만큼 세계 각국의 부가 이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나라도 한해 70억달러 규모를 원유수입에 쓸어 넣고 있다.
오일달러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 있다.
오일달러의 산유국집중에 따라 브라질·한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의 외채는 방대해지고 선진공업국들은 경제성장에 제동을 받고 있다.
이같이 쌓이는 오일달러를 갖고 산유국들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앙은행(SAMA)은 쏟아져 들어오는 원유대금을 관리하기에 정신이 없다고, 외지는 보도하고 있다.
SAMA은행으로 들어오는 피트로 달러는 하루 평균 3억2천만 달러.
실감나게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2천2백여억원.
지난 8년간 사우디아라비아에 쌓인 잉여 오일달러는 1천2백억 달러나 되는데 이 돈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 SAMA다.
그래서 SAMA는 국제금융가에서 가장 강력한 은행으로 군림했고 세계의 뱅커들은 SAMA에 줄을 대려고 애쓰고 있다.
미국의「데이비드·록펠러」도 SAMA은행총재를 만나려고 호텔 로비에서 서성거렸을 정도라니까.
SAMA는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아침에 수10개의 미국 대기업, 수백만 에이커의 노른자위 땅을 사들일 수 있을 것이다.
SAMA은행의 움직임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와일드카드(포커 판의)로 보는 것도 그러한 여유 때문이다.
SAMA는 대외 투자를 비밀에 붙이고 있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미국재무성증권 같은 안정성 있는데 투자하거나 80여개 주요서방은행에 예치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미재무성 증권 투자 액수는 약3백억 달러. 직접 기업에 꾸어 준 돈도 1백50억달러(잔액)에 달하는데 그 중엔 미국의 IBM이 3억달러, US스틸 2억달러, ATT 6억5천만 달러 등등.
회사의 주식은 5%이상 사는 것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다.
이러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달러 훈용방식에 비해 쿠웨이트는 좀더 적극적이고 상업적인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쿠웨이트가 보유하고 있는 잉여 오일달러는 6백50억달러로 추산되는데 서방 각국의 부동산·주식·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대기업이 발행한 채권에 투자한 것만도 70억달러이고 요즘은 선벨트지역에 대한 부동산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에 투자 한데서 벌어들이는 수익규모가 올해 76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쿠웨이트의 오일달러가 점령한 대표적인 부동산은 미국 사우드 캘리포니아주의 휴양지 키랜트섬과 30층짜리 호화판 아틀란트 힐튼호텔.
작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오일 주식 14·6%(10억달러 상당)를 매입하려다가 거절당하기도 했다.
일본에도 적지 않은 오일 달러가 상륙했다.
히따찌사의 주식 2천여만주를 비롯, 도오시바·미쓰비시 등 큰 기업들의 많은 주식들이 산유국 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오일달러의 유인으로 일본의 주가는 상승 기류를 타고 있다.
산유국들이 해외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는 은행에 예치하는 돈이 훨씬 많다.
은행에 예치된 오일달러는 국제금리의 변동에 따라 움직이는 유러달러로 변신한다.
「폴·볼커」미국 연방 준비 은행 이사장의 추산으로는 74∼79년 사이 유러달러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오일머니가 9백50억달러.
지금은 그보다 더 크게 불어나 유러머니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원유 대금으로 빨려 들어가는 거대한 오일머니는 한쪽으로는 한국과 같은 개도국의 국제수지 적자를 심화시키면서 또 한쪽으로는 국제 핫머니로 변신해서 국제금융가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이 젊어지고 있는 외채는 4천억 달러를 넘는다.
그것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원유값 대전이 주요원인이다.
브라질은 외채가 무려 6백억 달러나 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개도국의 외채는 지금 세계 경제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래서 IMF(국제통화기금)같은 국제 금융기관은 오일달러를 어떻게 순조롭게 빚많은 개도국에 환류시키느냐의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오일 달러의 환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때는 국제금융질서의 마비를 가져오고, 세계 경제는 패닉에 빠질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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