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구하며 스스로 자일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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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히말라야산맥의 바인타브락2봉(6천9백60m)등정에 나섰던 한국 악우회 카라코름 원정대(대장 심의섭·41)의 이정대 대원(28·서울 도곡동 진달래아파트2동1204호)이 정상50m 아래에서 하산하다 추락, 숨졌다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주재 한국총영사관(총영사 이원호)이 23일 하오 외무부에 보고해왔다.
보고에 따르면 이 대원은 동료 유영규 대원(26)과 함께 1차 정상공격 조로 선발돼 15일 하오1시30분(한국시간15일 하오5시30분·이하 현지시간)부터 9시간의 공격 끝에 해발6천9백10m의 정상능선에 도달했으나 마지막 50m의 절벽에서 난관에 부닥쳐 4시간 동안 등정을 시도했으나 실패, 탈진한 상태에서 하산하다 해발6천3백m의 제3캠프 지점까지 떨어져 숨졌다. 이 대원이 추락한 것은 자신이 기진맥진하여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자 동료대원의 희생을 막기 위해 스스로 유 대원과 연결한 자일을 풀었기 때문이었다고 원정대가 조사결과를 보고해왔다.
총영사관은 사고내용이 발생 7일만인 23일에야 접수됐으며 유 대원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8명은 모두 무사하다고 밝혔다.
총영사관은 또 원정대가 이 대원의 시체를 수습, 이슬라마바드로 후송한 뒤 팀을 재정비하여 7월말쯤 재차 정상도전을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사고경위>
이 대원은 15일 새벽4시30분 유 대원과 함께 해발 6천3백m의 제3캠프를 떠나 정상공격에 나섰다.
이들은 상오1l시30분쯤 6천5백m지점에 도달했고 공격에 나선지 9시간만인 하오1시30분쯤 정상을 50m앞둔 해발6천9백10m의 능선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지형은 더욱 험해져 이들 앞에 50m의 직벽이 가로 막아섰다.
80년 알프스 3대 북벽인 그랑조라스와 마테르호른에 오른 적이 있는 노련한 유 대원과 첫 해외원정이지만 한국 최고수준의 암벽등반기술을 가진 이 대원은 4시간 동안이나 이 암벽을 넘어서려고 애썼으나 고산병 증세와 탈진현상이 겹쳐 기진맥진한 상태로 물러서고 말았다.
하오5시30분쯤 공격을 포기한 이들 두 대원은 하산을 서둘러 밤8시40분 해발 6천5백m지점까지 내려왔을 때 이 대원은 거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이 빠져 걸음조차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만 실족, 빙벽에 매달렸다.
이 대원의 최후결단은 이때 내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허기와 추위, 어둠 속에서 더 이상의 사투가 허사임을 깨달은 이 대원은 유 대원과 연결한 길이 약15m의 자일을 스스로 풀어 빙벽 위에서 이 대원이 떨어지지 않도록 확보하고 있던 유 대원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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