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고발 겁내는 미국 공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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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행정기관의 낭비와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미 정부는 공무원 법을 개정하면서까지 부조리를 파발하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현실은 보복이 두려워 많은 공무원들의 부정을 보고도 못 본체하고 있다. 의리를 내세워 고발을 않는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미 정부는 1978년, 개정공무원 법에서 직업 공무원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내부 고발자 보호조합을 신설했다.
행정상의 실책을 폭로하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보복할 수 없도록 규정하는 한편 이 법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박해받고 있는 내부 고발자들을 지원하는 특별변호당국까지 설치했다.
그러나 현실은 밀고자들 대부분이 한직으로 밀려갔거나 감등·강등·해고 등의 보복을 받았다. 그래서 많은 공무원들은 옛날과 같이 동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당혹케 하는 정보를 공개할 뜻이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들은 새 법률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상사가 반드시 밀고자를 보복하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겁을 내고 있다.
연방정부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중 45%는 작년 1년 중 낭비·부정을 목격했거나 또는 그 확실한 증거를 잡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부정행위를 목격한 사람의 70%는 그것을 보고하지 않았다.
밀고를 꺼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새 기관의 영향력이 너무나 미미해 밀고자만 손해를 본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상사들의 보복으로 참담한 생활을 하고 있는 밀고자들이 그 부당함을 미 인사재정위원회에 제소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대부분이 패소했다.
그래서 밀고자들은 그들에게 보복적인 행동으로 나온 상급관료를 정부가 처벌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나쁜 사람들은 어떤 견책도 받지 않는다』는 사고가 어느덧 몸에 배어버린 것이다.
부정을 보고도 눈을 감아야 하는 풍조를 극복하는데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김건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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