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죽선 하나로 여름 속에 가을이…|너무 답답하지 않게 여유 갖도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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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K 화백이 합죽선 하나를 선물로 보내왔다. 쫙 펼쳐 본부챗살 속에는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갈대밭이 우거질 대로 우거져 있고, 가을 물이 맑아질 대로 맑아져 있다. 그 위에 희끄무레하게 걸려있는 것은 하늘인가? 문자 그대로 추수공장천일색이다.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밭 물가에는 이미 기러기 2마리가 내려와 앉아 있고, 또 2마리는 지금 막 날개를 접으며 내려앉을 채비를 하고 있다. 부챗살 위 천심을 삥둘러 화제가 쳐져있다.
만리강호 일섭신
내시달설우달춘

<만리 강과 바다 넘어 온 한 나뭇잎 같은 몸이 올 때는 눈을 만나고 갈 또한 봄을 만나더라>다. K 화백의 우정 어린 이 상모도 합죽선 하나로 하여 나의 여름은 미리부터 서느롭다.
7월은 산과 바다의 계절이다. 그러나 무작정 산과 바다로 뛰어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부채 하나로도 접었다 펼칠 줄 아는 산수의. 우리는 예부터 더위를 씻는 척서가 있었을 뿐 망둥이처럼 뛰기만을 좋아하는 피서란 걸 몰랐었다. 우리들은 조용한 시 한 수로 더위를 씻어내자.
『산에 올라』(김재충) <한나절 모래밭에 키를 재는 미류나무>친구의 죽음과는 아무상관이 없는(?)풍경을 끌어다가 상관 짓는데 이 시인의 능력이 있다. 그러나<하늘도 그대로 익은 숙석 옛 빚인데>는 리듬이 죽는다. 고쳤으니 유의해 보시도록.
『달맞이꽃』(최상남)아주 무난한 작품. 그러나 다 읽고도 무엇인가 모자람이 남는 것은 이 작품이 주는 메타포가 없는 까닭이다.
『강가에서』(이성목) 3수까지 이끌어 나가기에는 좀 모자라는 감(소재)이었다고 그리고 수수마다 똘똘 뭉친 것이 흉. 끝 수 종장을 풀어놓았다. 하도 답답하여.
『덕유산 삼경』(박명진)이 시인의 작품은 늘 배배 꾀어있다. 틀은 좁은데 하고 싶은 말은 많고, 그래서 너무 많은 말을 구겨 박는 버릇이 있다. 좀 느슨느슨하게 걷는 보법을 배워야겠다. 좀 바로잡았다.
『자취1』(이국헌)<기암 괴송 표적 따라…>「괴송」이란 말도 있는가? 노송이다.「무무히」니「산다」니 에도 운이 따르지 못해 고쳤다.

<정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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