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사기가 낮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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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H상호신용금고의 K사장은 금년 안에 직원80명 모두를 대상으로 일본 해외연수를 실시할 작정이다.
해외연수라고 해야 유별난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고 상가나 구경다니며 일본인 점원들의 「친절」 만이라도 눈여겨보고 온다면 대 만족이라는 것이다.
회사측에서 보조해줄 여행경비는 1인당 1천달러씩 .보너스 7O만원 정도를 더 주는 셈치겠다는 것이 K사장의 계산이다.
과연 K씨의 공언대로 실행에 옮겨질는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일반은행에 비해 구멍가게에 불과한 신용금고로서는 예사로운 결단이 아니다. 눈에 띄게 직원들의 사기가 달라졌다.
운전기사까지 포함해 모두들 신바람이 났고 짬짬이 일본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꼭 외국구경을 시켜주어야 직원들의 사기가 진작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허울좋은 대가집 행세만 해온 은행사람들로서는 내심 여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외국여행을 동경하는 말단행원들뿐만 아니라 지체 높은 은행장들까지도 이 눈치 저 눈치 안보고 소신껏. 밀어붙일 수 있는 일개 신용금고사장 K씨가 무척 부러워 보일는지도 모른다
은행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모 은행 자체조사 결과에도 46%가 기회만 있으면 직장을 옮기겠다고 고백했는가 하면 평생직장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은행이란 곳이 사람을 밑천으로 하는 장사인 까닭에 은행원의 사기저하는 더더욱 심각한 일이다.
아무리 은행이 관공서처럼 일사불란하게 운영된다 손쳐도 은행원들에게 청백리적인 사명감만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은행은 원래가 장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나깨나 월급타령이다. 창의적인 성취동기가 먹혀들지 않고 일에도 재미를 못 느끼는 형편이니 월급봉투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지도 모른다.
그들의 주장대로 은행원의 봉급수준이 일반 대기업들에 비해서 낮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같은 돈 장사로서 조무래기 취급을 해 온 단자회사나 보험회사·증권회사·상호신용금고 등에 비해서도 훨씬 적은 봉급을 받는 것이 더욱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경력 5년 정도의 은행원 봉급명세 (대졸·군필)를 보면▲본봉 14만6천원▲직책수당 6만4천원▲금융수당8만4천원, 여기에 점심값 2만5천원까지 쳐서 모두 32만원 정도를 받는다.
같은 경력의 단자회사 직원봉급이 윌 45만원 수준이니까 상당한 차이다.
게다가 보너스가 은행원의 경우 기본급(본봉+직책수당) 인 21만원에 대해 연간 5백%인데 비해 단자회사는 봉급총액인 45만원에 대해 6백%를 준다.
실제 보너스 액수로 따져보면 은행원은 1백5만원을 받는데 단자회사는 2백70만원을 받는 셈이다.
게다가 지난해는 장사가 잘됐다고 해서 1백%씩 진짜 보너스를 더 받았다고 단자회사 직원을 대하면 생기가 있어 보이는데 은행원을 보면 왠지 어깨가 축 처져 보인다는 비유도 결코 무리한 말이 아닐 것이다.
돈 더 주는 직장을 찾아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은행원들이 은행을 떠나갔는가. 월급을 더 많이 받을 뿐 아니라 직급도 보통 한두 계단씩 올라갔다.
60년대에는 우수한 인재들의 집결지로 자처했던 은행이 7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가장 이직률이 높은 직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 은행간부는 『아마도 지금까지 은행을 떠나간 유능한 인재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봉급을 올려주지 않아서 은행이 절약한 돈보다도 훨씬 큰 금액의 손실을 자초한 일 일 것』이라고 자연을 금치 못한다
연내로 설립된다는 한미합작 은행에 대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은행원들 사이에 심심챦은 화제거리가 되고있다.
봉급을 얼마나 줄는지를 서로 수소문한다 .외국인이 참여한다니까 적어도 단자회사 정도는 주지 않겠느냐는 지레짐작도 왁자하게 퍼져있다.
은행의 민영화니, 자율화니 하는 공허한 슬로건보다는 손에 거머쥐는 봉급이 얼마나 오르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합작은행설립을 계기로 은행에도 한차례 대이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장들도 직원들의 봉급문제가 이젠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어쩌면 솔직한 심정이 합작 은행설립을 계기로 일이 터져 주길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카웃 열풍 속에 자기네 사람을 빼앗길 염려도 없지 않겠지만 핑계삼아 봉급을 올려줄 수 있는 명분이 생겨나는 까닭이다.<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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