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개편의 전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행정구역을 어떻게 개편·조정하는 것이 현실성에 가장 맞고 국민들의 편익을 위하는 것일까. 이 문제는 건국이래 정부가 다루어온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의 하나였지만 아직껏 만족할만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있다.
대구 및 인천의 직할시 승격 등 대폭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있는지 며칠 안되어 이번에는 민정당에서 또 다른 개편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만 보아도 국민들의 이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얼마나 높은지를 알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행정구성 개편은 경제성장, 인구의 도시집중 가속화 등 급격한 사회변동에 따라 불가피하게 제기되어 왔다.
주민들의 생활권과 행정구역이 일치하지 않아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거나 거리·위치 상 불합리하게 구획된 행정구역이 아직도 많고, 그런 지역이 새로 생기는 이상 행정구역은 앞으로도 손대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민정당에서 내놓은 개편안은 우선 민원인이 걸어서 면사무소에 갈 수 있는 크기로 면을 축소하는 대신 군을 현행 선거구 단위로 확대한다는 것 등으로 요약된다.
60년 만에 처음이라는 73년의 대폭적인 행정구역 재조정이래, 거의 해마다 개편· 조정은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부분적인 개편에 머물렀을 뿐 국민들의 변화된 생활환경, 사회의 여건에 적합한 근본적인 개편에는 이르지 못했다
특히 도단위 개편은 울진군의 경북편입, 금산군의 충남편입 등 일부 조정은 있었으나 전국을 13도로 나눈 한일합병 당시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수백년을 내려온 전통이나 역사성 ,지방민들의 향토애 등으로 그것은 누구도 손대기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다.
민정당이 주민들의 변화를 위주로 면을 축소하는 대신 군을 확대조정 한다는 것은 일단 수긍이 가는 구상이다.
그러나 군을 선거구단위로 개편하는 경우 굳이 현재의 도 군제를 존속시켜야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된다.
가령 충청북도의 경우 그렇게 되면 청주·충주·제천시를 빼놓으면 4개군 만이 남아 겨우 4개군을 관할하기 위해 1개 도청이 있는 셈이 된다.
차라리 도와 군을 하나의 행정단위로 통일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논의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차원의 행정구역 조정은 정치적인 계산, 즉 선거구와의 밀접한 관련하에서 구상되고 추진되어 왔다는 점이다 .민정당의 구상이 구시대의 이러한 유형과 같지는 앉겠지만 선거구를 염두에 둔 행정구역 개편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행정구역이란 두말 할 것도 없이 오랜 역사와 습관과 필요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것을 전면 개편한다고 할 때 여기엔 찬반시비가 당연히 따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막대한 공부정리 등 벅찬 사무량과 행정의 공백, 청사의 신축이전, 자치단체자산 승계 등 결코 손쉬운 작업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시화 율은 시이상을 도시로 칠 때 약 51%, 읍 이상으로 할 때는 69%에 이른다. 이것이 서기 2천1년에는 81%가 된다는 추산도 나오고 있다. 또한 그 때쯤이면 지방자치제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대중 교통기관의 발달로 서울까지의 통근거리가 평택이나 안성쯤이 아니라 청주나 조치원까지로 확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앞으로의 행정구역 개편은 이러한 여건변화를 충분히 고려에 넣어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할 것이다.
집권당의 개혁의지는 좋으나 절대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이외는 신중히 대처해야할 것이며 일거에 졸속 처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안에 이 문제를 전담하는 특별기구를 설치, 오랜 기간을 두고 연구하는 방안도 검토함 직하다. 아무튼 이 문제는 국민모두의 관심사인 만큼 공청회 등을 통한 심의·토론으로 민의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