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통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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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딸아이의 2기분 납부금을 내러 학교 (사립 초등학교) 앞의 지정된 은행엘 갔다 나오는 길에 잠깐 아이의 교실을 들러보고 싶었다. 친구 집 근처에 볼일이 있어 갔다가 친구 집을 들러보는 그런 기분으로 선생님을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어쩐지 서투르기만 한 것 같은 나는 올해 처음 학부형이 되었는데 이 역할 또한 도무지 의젓하지가 못하다. 『얘, 선생님 찾아뵈었니?』 『어마! 안 가 봤어? 거짓말하지 말어. 더군다나 1학년일 때 안 가보는 것은 자식을 위해서도 좋은게 못돼』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너의 아이를 위해서니 꼭 찾아가 보라는 충고의 뜻일까? 아니면 몇번 찾아가 뵈었나하고 내 심중을 계산해보고 싶어서일까? 어느날 학교로부터 『가정과 학교, 사랑의 통신』이라는 조그마한 책자를 한권 받았다. 가정에서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은게 있다든지, 담임 선생님이 아이에 관해서 학부형에게 전할게 있을 때 『사랑의 통신』난에 적어 넣도록 하여 직접 만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으로 항상 아이들 가방에 넣고 다니게끔 되어 있다.
그 책자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한권의 읽을만한 책을 선사 받았을 때처럼 뿌듯해 오는 마음이었다. 그 난에 써넣었던 것을 한가지만 여기 소개하고 싶다.
『직접 만나 뵙고 자주 대화를 갖는 것이 진실로 아이를 위한 것인 줄 잘 알면서도 그럴 수 없는 것이 가슴아프지만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통신」을 받았을 때 무척 기뻤읍니다.
좀더 즐거운 이야기로 부모의 난을 메우고 싶었는데, 아이가 과제지를 안 갖고 와서 빌어다 베껴 숙제를 하게 했다는 말씀을 드리게 됐어요. 하나 사고의 깊이만큼만 생은 기쁨과 보람을 안겨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생각하며 열심히 지도하겠읍니다.』
이 글에 대한 답장을 선생님은 이렇게 써 주셨다.
『「사랑의 통신」장이 이렇게 역할을 다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바쁘신 중에도 아름다운 글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엇인가 내 진심을 털어놓을 때 그 진심을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그에게만은 나도 진실로 고마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지금 친구를 찾아보는 그런 기분으로 가볍게 학교를 들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책자를 통해 아이 담임 선생님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부대끼고, 어려움 많은 세월일지라도 그럼으로써 더욱 보람있는 생이 될 수 있을지니 부디 나의 아가-본희와 본우가 1백점 받는데만 급급하지 말고 어려움에서 일어설 줄 알고, 한가지 꽃을 대하면 『예쁘다』고 느낄 줄 알며, 남의 어려움을 보았을 때 선뜻 나서서 도와줄 줄 아는 그런 성품으로 자라기를 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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