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섬진강의 특산 은어회가 별미|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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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장간이 획 하늘을 긋는다. 반짝, 은어가 햇빛에 반사한다. 풍덩하고 미끼은어는 날쌔게 물 속을 헤쳐가고 그 뒤를 다른 녀석들이 바짝 덤벼든다.
순간이다. 후닥닥하고 장작 뻐개지는 소리가 나자 낚싯대를 잡아챈다.
은어 두 마리는 물위에 하얀 포물선을 그리며 종다래끼 속으로 잽싸게 들어간다. 강변 바위 언덕에서 어슬렁대던 자라들이 놀란 듯 허겁지겁 물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푸른 물 흰모래, 수려한 강변 풍치가 끝없이 어우러진 섬진강 상류. 그 지류인 보성강이 서로 만나는 전남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는 전국 제1의 은어 서식처다.
은어는 이름 그대로 곱게 생긴 몸매에 향긋하고 나긋나긋한 고기 맛을 뽐내는 천어의 여왕. 흙탕물·괸 물이 실어 언제나 맑은 물이 철철 흐르는 여울목에 사는 깔끔이 물고기다.
『시방부터가 은애 (은어)철이지라우. 7월 중순만 되믄 폴뚝 (팔뚝)만한 놈들이 버글버글 한다니께요.』
30년째 은어잡이를 하는 박인규씨 (58)는 압록의 원래 이름이 두 강물이 합친다해서 합록이었다며 압록 일대가 은어의 고장이 된 데는 민물과 갯물이 합하는 천연적 조건 때문이라고 말한다.
6월 초하루부터 9월말까지가 은어철. 9월이 지나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철이 되면 어미은어는 강 하류 하동 쪽 하상에 산란한다. 은어 알은 아무리 큰물이 지나도 떠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착란.
부화된 새끼 떼는 강물 흐름에 따라 강구 바닷물에서 월동하고 이듬해 해빙기가 지나면 다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4, 5월 봄기운을 타고 보성강 시원한 민물에 엉켜 성어가 되면 6∼9월까지 압록의 맑은 강하에 피둥피둥 살이 쪄 숭어만큼 (30∼40cm)이나 크게 된다.
이 고장의 별미 은어회도 이 때가 제격이다. 갓 잡은 은어를 비스듬히 엷게 썰어 어린애 손바닥만한 들깻잎에 싸고 초장을 듬뿍 쳐 먹는 은어 쌈은 입안 가득한 향훈이 일품이다.
전혀 비리지가 않다. 씹으면 수박 향기가 난다. 은어를 회쳐서 먹을 때의 격식을 차리자면 깻잎을 깔고 대로 만든 그릇에 담아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초장은 찹쌀고추장에 물엿을 약간 섞고 집에서 내린 식초와 버무려야 한다. 여기에 숭숭 썬 풋고추와 통마늘을 곁들여 먹으면 고소한 고기 맛이 더욱 살아난다.
『간디스토마 땜시 바깥 분들이 회 먹기를 꺼리는 모양인디 은애는 본시 물을 거슬러 사는 데다 몸에 비늘이 없으라우. 괸 물에선 아예 죽어뻐링게 디스토마균이 낄 수가 없구만이라우. 군 보건소에서도 매년 검사를 하는디 섬진강 은애는 깨끗하지라우. 허튼 말로 은애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지라우.』 박씨는 간디스토마 이야기가 나오자 관자놀이를 불끈 세우고 불쾌하다는 표정이다.
은어의 수명은 1년. 산란을 마친 은어는 기진맥진하여 퇴색된 검은 껍질과 뼈만 남은 채 강물에 떠올라 둥둥 떠서 죽어간다.
『알을 까놓고 떠내려가는 은애는 물새도 잡아먹지 않는당께요. 요런 것 보문 사람 심지처럼 흐린 것도 없으라우>』 압록 어구에서 횟집을 하는 박종선씨 (33)는 은어만큼 성질이 칼날 같은 물고기도 없다고 한다. 은어의 성질을 이용한 낚시법이 바로 공낚.
성깔이 팔팔하고 시샘이 많은가 하면 암수의 정이 애틋하다. 자기들이 노는 곳엔 피라미·황어·모래무지·농어·동자개 따윈 얼씬을 못하게 몰아낸다. 또 자기들이 찍어놓은 먹이 (규조·남조)엔 같은 은어라도 다른 식구들은 쫓아버린다. 물 밖에 나오면 30여초를 펄떡이다간 죽어버린다.
그래서 은어 낚시엔 낚싯밥이 따로 없다. 길이 7m30cm짜리 낚싯대 끝에 살아 있는 은어의 코에 코뚜레를 꿰어 은어 떼가 노니는 곳에 집어넣으면 다른 은어들이 덤벼들다 낚시바늘에 걸리는 것이다.
이것을 걸낚 혹은 놀림낚시라고도 하지만 이 고장에서는 「도모쓰리」라는 일본말로 더 잘 통한다.
그러나 9월, 산란기가 다가올 땐 암놈 은어가 미끼. 암놈을 꿰어 물에 띄우면 수백 수천의 수놈들이 암놈을 보호한다고 천방지축으로 몰려들다 낚시에 꿰이고 만다.
『은애 의리가 사 람의리보다 낫지요잉. 제 몸 돌보지 않고 같이 퍼덕거리니 말입니다.』
투망으로 잡는 대량 어획은 금지되어 있어 재수좋은 날이면 이력난 낚시꾼은 하루 1백수는 건진다고 한다 .은어 낚시는 물살이 센 곳에서 해야하기 때문에 다리 힘이 좋은 젊은이들이라야 한단다. 꾼들은 한 마리 (20∼25cm)에 3백원을 받고 횟집에 넘기면 이를 5백원에 손님을 받는다.
하동에서 넘어와 횟집을 한다는 이장순씨 (38)는 7, 8, 9월 석달에 1백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섬진강 은어에 매달린 주민들만도 2백여 가구에 l천여명. 석곡면에서 압록에 이르는 16km 비포장 도로는 지난번 선거 때 포장하기로 약속이 되었지만 금년에도 실현은 어려울 것 같다는게 주민들의 말이다.
한여름이면 광주·전주·남원·이리에서 5만여명의 피서객이 몰려 들어오지만 변소하나 없다. 전깃불이 안 들어와 강변 마을은 밤이면 암흑. 간간이 배터리용 전구를 사용하는 집들만이 별처럼 반짝인다.
『허기사 문명 들어오고 사람 꼬이면 물 더러워져 은애 없어질까 겁나네요. 허지만 묵고 살라믄 최소한 손님 받을 시설은 갖추어야지라우.』
박씨는 전설 같은 섬진강 은어 맛을 세상에 알리자면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겠다고 한다. <곡성=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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