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원유가 남아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내 석유제품 수요가 줄어들어 재고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석유제품의 원료가 되는 원유의 재고도 넘쳐흐르는 판에 산유국에서는 더많은 원유를 사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비국이 산유국의 호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하고 있다.
1일 현재 우리나라 석유제품(휘발유·등유등)의 재고량은 1천2백50만배럴로 작년6월말의 8백60만배럴 보다 68.8%나 증가했다. 4월의 10%, 5월의 16%에서 급격히 뛰어오른 것이다. 석유류 가운데 특히 나프타는 5월말 현재 작년보다 소비가 38.2%나 감소했다.
지난 4일 동안 5개 정유공장의 1일 평균 생산량은 46만배럴. 전체시설능력의 58%에 지나지 않는다. 소비는 1일 35만배럴에 지나지 않았다.
여름철 비수기라 치더라도 소비가 작년 보다 11%나 줄어든 셈이다. 1일의 원유재고는 1천2백80만배럴로 작년에 비해 68·7%나 늘어나 정유회사들은 원유증가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저장할 곳이 없다. 산유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원유를 줄이려면 당장 클레임을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은 일본도 역시 마찬가지다. 넘쳐흐르는 원유도입량을 감당하지 못해 일본의 석유회사나 종합상사들이 산유국과의 원유거래량을 삭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기업들은 ▲작년부터 석유제품의 수요가 줄어든데다 이달부터는 정유회사들이 생산량을 15% 줄이며 ▲원유는 비싸고 제품은 오히려 싼 시장구조 ▲엔화의 약세로 원유가격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량을 줄이지 않을수 없다고 울상이다.
제 물건도 못팔고있는 판에 멕시코는 1일 10만배럴의 원유를 30만배럴로 늘려 『공급하겠으니 이를 받아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만약 이를 거절하면 비상시 멕시코에 원유를 달라고 사정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시장진출길이 막힐 우려가 있기 때문에 진퇴양난이다.
우리나라도 멕시코와 나이지리아 에콰도르 각 산유국으로부터 원유공급제안을 받고 있다. 멕시코는 1배럴에 38달러50센트짜리를 4달러 낮춰 34달러50센트에 모두 4만배럴을 팔겠다고 제의했다. 에콰도르는 1배럴 34달러 50센트를 1달러 더 낮춘 33달러50센트로 1만5천배럴을 사달라고 요청, 정부가 이를 승인했다. 당장 원유가 남아돌고 있지만 장기적인 원유공급 안정을 위해서 어쩔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텍사코등 미국 4대 메이저가 가지고있는 대형유조선 가운데 38척이 할일이 없어 항해를 중지했다. 이 유조선은 비축선으로 용도를 변경할 만큼 세계원유시장이 달라졌다. BP의 유조선6척도, 또 셀의 유조선 10척도 「휴항」을 선고받았다.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떠나 울산과 여수로에도 한국행 유조선의 기름선적이나 항해일수도 점차 느려지고 있다. 항속조정으로 원유 재고를 조절하기 위한 정유회사의 편법이다.
여수와 울산등에서 부산 목포 군산 인천등으로 석유제품을 수송하는 국내 연안유조선 89척 가운데 20여척도 이미 휴항 했다.【최철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