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훈, 「명인」 이어 「본인방」 획득하면 사상 4번째 양대 타이틀 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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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의 천재기사 조치훈군(25)이 일 바둑계에서 가장 전통이 있는 「혼인보」(본인방) 타이틀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오는 23·24일의 대국에서 「다께미야」(무궁정수·30) 「혼인보」를 한번 더 꺾으면 그는 일본 바둑계 최고의 영예인 「명인」 「혼인보」 양 타이틀 보유자가 된다.
일본의 바둑 전은 1941년 마이니찌(매일)신문의 「혼인보」전으로부터 시작됐다. 「혼인보」란 16세기 일본 전국시대 때부터 세습제로 내려오던 가문의 이름으로 21세 「본인방」 수재명인이 은퇴하면서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타이틀전으로 내놓은 것.
「명인」은 일 전국시대 때의 효웅 「오다·노부나가」(직전신장)가 당시 「혼인보」 산사를 『그대는 명인』이라고 부른데서 처음 불려진 것이다. 이후 명인은 바로 바둑계의 제1인자 즉 입신(9단)경지의 기사를 가리켰고 8단은 준명인, 7단은 상수라고 불렀다.
현재의 명인전은 1962년 요미우리(독매)신문이 신문기전으로 내걸면서 시작됐으며 75년부터는 아사히(조일)신문이 주최하고 있다(요미우리신문은 그 대신 상금이 최고인 대기전「기성전」을 주최). 일본의 프로기사는 모두 3백44명. 입신의 경지에 들어간 9단만도 56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기사들이 노리고 있는 최대의 꿈은 「명인」이나 「혼인보」 또는 「기성」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3대 타이틀 중 하나만이라도 손에 넣은 기사는 열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다.
그리고 일본바둑사상 역사가 일천한(5년) 기성전을 제외한다면 「명인」과 「혼인보」 두 타이틀을 모두 지닌 기사는 지금까지 단 3사람뿐이다. 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전반까지 일 기계를 주름잡았던 「사까따」(판전영남·61) 9단이 63·64년 2년 동안 명인과 「혼인보」 타이틀을 함께 가졌고 중국인 임해봉 9단(39)이 69년 1년 동안, 그리고 컴퓨터란 별명의 「이시다」(석전방부·32) 9단이 74년 1년간 각각 양대 타이틀을 보유했었다.
「이시다」는 당시 8단이었으나 「명인」과 「혼인보」 두 타이틀을 손에 넣음으로써 명실공히 바둑계의 1인자가 됐기 때문에 일본기원이 9단으로 승단시키기도 했다.
조치훈 9단이 이번에 「혼인보」가 되면 일본바둑 사상 4번째 양대 타이틀 보유자가 된다. 그리고 75년 이후 6년 동안 계속되던 일 바둑계의 군웅할거시대도 끝나 이른바 「조치훈 시대」의 막을 올리게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계 도예가 심수관씨는 가보 바둑판을 이번 본인방전에 사용토록 내놓았으나 뜻은 이루지 못했다.
조치훈군이 「혼인보」가 되면 일본바둑 제1인자가 되는 것 말고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특별대우를 받는다.
수입 면에서 보면 「혼인보」 상금 1천2백만엔(약3천6백만원) 이외 「명인」 「혼인보」 전 대국료 등을 포함 1년간 적어도 4천만∼5천만엔(약1억2천만∼1억5천만원)의 수입을 얻는다. 여기에 저서나 강연, 후원회 지원 등의 간접적 혜택이 뒤따른다.
그리고 공식 타이틀전이 아닌 대국에서는 언제나 상석에 자리한다.
일본의 공식 타이틀전은 모두 18개. 타이틀전마다 타이틀 보유자가 있기 때문에 상석은 언제나 타이틀 보유자가 앉지만 비공식 바둑 전에서는 「명인」 「혼인보」 등 타이틀보유자가 상석에 앉기 때문이다.
작년 명인전 도전 때는 당시 명인 「오오따께」(대죽영웅·39)가 대국도중 봉수(2일제 바둑시합에서 첫날의 마지막 돌을 별도로 기록, 다음날 공개하는 것)를 했지만 이젠 백 돌을 쥐고 둘 때는 상대가 누구든 봉수할 권리를 갖는다.
일본바둑계는 이제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70년대 들어 신포석의 창시자 「기따니」(목곡실)의 문하생 중 「이시다」 「가또」 (가등정부·33) 「다께미야」의 3총사가 일 바둑계를 주름잡았다.
「기따니」문하의 선봉장인 「오오따께」가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이젠 「기따니」문하의 「달타냥」격인 조치훈이 선배들을 누르고 정상에 오르고있다.
이번 「홍인보」 대국에 앞서 「다께미야」도 『조군은 너무나 좋은 후배다. 언젠가 최강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75년 제12기 명인전 대국 때 「이시다」 당시 「혼인보」는 임해봉 명인에게 3연승 후 4연패한 일도 있었다. 조치훈에게는 일본 기원선수권 도전 5번기에서 「사까따」9단에게 2연승 후 3연패로 무릎을 꿇은 일도 있다.
이 교훈을 살린다면 조치훈의 「혼인보」쟁취는 이미 손에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김두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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