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한 탈주범과 여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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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나의 공통된 소망이 있다. 「잘살아보려는」소망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잘산다는 가치의 차이는 조금씩 있겠지만 말이다. 정신적 평화가 보장되고 그 정신적 평화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물질적 안정을 「잘산다」는 기준으로 들 수 있으리라.
그래서 사람들은 양심과 인간의 소리를 중요시하고 적당한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자신의 정신적 평화나 물질적 안정추구 때문에 전혀 상관도 없는 타인이 피해를 보지는 않나 살펴볼 필요도 있다.
자란 환경과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는 사회구성원 모두의 만족을 위해 이따금은 개인의 욕구를 말살한다는 하나의 논리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얼마전 공관장에서 3명의 소매치기 피의자가 수갑을 풀고 탈주했다.
이에 대해 각 언론 기관에서는 교도행정의 모순, 숨겨준 여인들의 커다란 사진까지, 다시 말해 사건의 시작부터 경과 결과 등을 빠짐 없이 연일 대서특필했다.
결국 경찰의 손이 미치지 못한 상태에서 이들 일행은 모두자수를 했고 일부 언론 기관에서는 이를 언론의 홍보 덕택이라 공치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결과만을 너무 중시하는 때도 많다.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탈주범이 자수해 시민들은 안도의 숨을 쉬며 「사필귀정」을 되뇌었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가 하나 간과한 점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범인들을 따라 달아났던 여인들 말이다.
어찌 보면 법인들이 자수하게 되기까지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여인들과 아이였는지도 모른다. 감이 도망 다니면서 끈질기게 자수를 권하던 여인들은 스스로 먼저 자수를 행동으로 보였다. 전과자에 대한 좋지 못한 선입관이 다시 한번 굳어지고 있을때 경찰의 노력이나 언론기관의 홍보보다 훨씬 더 간곡하게 사건의 원만한 해결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자수를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숨을 곳이 없었다」고 스스로의 칭찬에 급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의 탈주에 대한 우리모두의 책임은 무엇인가, 순간이나마 양심을 찾은 그들의 진정한 소리는 무엇인가 귀기울여 곰곰이 생각해 봐야하겠다.
우리모두의 소망이 몇몇 사람에 의해 침해받는 수도 있겠지만 몇 사람의 소망이 다수의 인식 때문에 희생당하는 경우도 번번이 생기기 때문이다.
황인희-▲1960년 서울생 ▲이화여대 사회생활과3학년 ▲이대학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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